[정재완의 디자인 생각] 호텔방과 쪽방…도시는 무엇을 숨기기 위해 행정력을 소비하는가

  • 정재완 북 디자이너·영남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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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1-28   |  발행일 2022-01-28 제36면   |  수정 2022-01-28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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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힐튼호텔.

72만명의 난민 낳은 88서울올림픽
정비되지 않은 모습 보여주지 않으려
가림막 설치하고 벽화 그려 환경정화
여전히 존재하는 화려한 건물 속 빈곤
부정한다고 말끔히 사라지지 않아

누구도 난민 되지 않으리란 보장 없어
디자이너는 도시 빈곤 메커니즘 읽어야


자동차는 북대구요금소를 빠져나와 모처럼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렸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사람도 자동차도 몸이 근질근질했을 터이다. 중학생 아이는 뒷좌석에서 연신 힙합을 따라 부른다. 힙합과 자동차 가속 페달은 꽤나 근사한 조합이다. 여행의 목적지는 서울 남대문로 5가에 위치한 힐튼호텔이다. 1983년 남산 자락에 지어진 힐튼호텔이 곧 철거된다는 소식을 듣고 사연이 궁금했다. 가끔 출장 중에 서울역을 오가며 멀리서 보기만 했던 곳이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호텔을 설계한 건축가 김종성과 의뢰인 김우중 회장과의 일화가 기사화되어 있었다. 김우중은 당시 미국에서 대학교 건축학과 학과장으로 재직 중이던 김종성에게 새로 지어지는 호텔 건축을 의뢰했고 그는 교수직을 버리고 한국에 돌아왔다. 건축가는 힐튼호텔을 가리켜 "1980년대 한국 건축의 이정표가 된 '건물'이 아닌 '건축'"이라고 자부한다. 이번 서울 여행의 목적은 호텔 건축 체험이었다. 우리는 이곳에 직접 투숙하면서 사라질 건축물을 몸과 머리에 기억해두고 싶었다. 서울 도심의 정체는 예상했지만, 역시나 상상을 초월했다. 뒷좌석에서는 여전히 힙합이 흘렀지만 차는 도무지 속도를 내지 못한다. 흥얼거리던 아이의 외마디, "배고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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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튼호텔 옆 동자동 쪽방촌. 재개발을 반대하는 붉은깃발이 걸려 있다.

1980년대에 지어진 건물은 서양 모더니즘 건축의 세례를 받은 건축가의 감각과 건설 노동자의 성실함이 묻어났다. 해외에서 공수해 왔다는 고급 대리석으로 마감한 호텔 로비는 차분하면서 격조가 있었다. 유리로 덮인 높은 천장은 웅장함을 보여주면서도 자연 채광이 들어와 아늑함을 연출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설치되는 '스위스 기차마을 미니어처'는 지난 몇 년 동안 어린이 손님들에게 명성을 탔다. 장난감 마을에는 기업의 광고판을 부착하고 쉴 새 없이 달리는 기차들이 '지금 여기'의 시간을 알려주고 있다. 손님을 응대하는 직원들의 노련함도 돋보였다. 이런 호텔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컸다. 객실에서는 한양 성곽길이 보였고 멀리 남산 전망대가 우뚝 서 있었다. 자연 풍경을 보고 있지만 어딘가 인공적인 냄새가 났다. 호텔의 전망을 위해 산이 존재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소파에 묻혀 장시간 운전으로 지친 몸을 쉬고 있는 중에 하나의 사건이 시작되었다. 적어도 내게는 '사건'이었다. 쪽방촌 계급사회!

서평 잡지 '서울리뷰오브북스'의 편집위원들과 함께하는 단체 톡방이 있다. 이곳에 계신 분들은 과학철학자, 경제학자, 천문학자, 사회학자, 정치학자, 건축가, 문학평론가 등 다방면에 걸쳐 책을 열심히 읽고 쓰는 사람들이다. 사건의 시작은 이곳에 시사 다큐 프로그램 링크가 올라온 것이다. 작년 말에 방송된 것으로 '쪽방촌 계급사회'라는 제목이었는데 거대 도시의 가장 약하고 아픈 부분을 고발하고 있었다. 잡지 다음 호를 위해 조문영 교수는 쪽방촌에 관한 책 리뷰를 준비하고 있었고 정택진의 책 '동자동 사람들: 왜 돌봄은 계속 실패하는가'(빨간소금, 2021)를 언급했다. 힐튼호텔 바로 옆이 동자동이다. 책에서 동자동의 장소적 맥락을 소개한 부분이 흥미롭다. 한국의 빈곤층 주거지를 연구한 이소정(2006)은 "빈민 거주 지역은 도시의 하층민에게 저렴한 주거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산업화에 필요한 저임금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재생산하는 기능을 수행했다"고 썼다. 브라이언 라킨(2013) 교수는 "철도, 도로, 빌딩과 같은 기반 시설들이 근대화의 표상으로 도심 한복판에 자리잡아야 했다면 빈민의 공간은 근대성의 표상 밖에서 그것을 가능케 하는 또 하나의 기반 시설로 존재했다"고 밝히고 있다.(235~236쪽) 1970~80년대 동자동과 양동은 한때 도시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빈민 노동자 가족들이 사는 곳이었지만 일자리가 축소되고 사라지면서 현재는 일하지 못하는 고령 빈민자의 쪽방촌이 되었다고 한다. 화장실도 없는 한 평 남짓한 지하방 한 칸이 월세 25만원이나 하고 이곳에 살지 않는 건물주는 관리자 계급을 활용해 주민들을 감시 감독한다고 고발하며 저자는 이러한 '빈곤 비즈니스'를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부끄럽게도 서울역을 수시로 오가며 서울스퀘어 지하 식당가에서 고급 요릿집을 가본 적은 있어도 동자동과 양동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역 광장에 있는 노숙인들과 도시락 나눔 줄을 멀찍이 피해다니기만 했지 그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는 않았다.

양동은 힐튼호텔과 서울스퀘어, 서울시티타워 사이에 끼어있는 쪽방촌이다. 한때 하루 종일 볕이 밝게 드는 동네라고 해서 붙여진 '양동(陽洞)'이라는 이름은 이제 무색하다. 새로 지어진 고층 건물이 사방을 에워싸면서 그늘지고 고립된 동네가 지금의 양동(현재는 남대문로 5가)이다. (위성사진에서조차 고층 건물의 그림자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는다) 길을 걸어도 양동의 쪽방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건물에 가려지기도 했고, 높은 가림막을 세워놓았기 때문이다. 기밀 내용을 감추기 위해서든, 부끄러운 장면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든 가림막은 쉽고 효율적인 장치이다. 기록에 의하면 지구인의 잔치 88서울올림픽은 72만명의 올림픽 난민을 만들었고 미처 정비(?)되지 못한 동네는 높은 가림막을 설치하고 벽화를 그려 환경미화를 완성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18 평창동계올림픽 때에도 용산을 지나는 KTX 창밖 풍경이 국격에 맞지 않는 부끄러운 것이라며 자성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개발의 논리로 험한 소리를 쏟아내는 일이야 하루 이틀 겪는 것이 아니지만 최소한 그 장소에 머무는 사람의 삶을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될 일이다. 화려한 빌딩 뒤편에 숨어있는 작고 초라한 집들을 생각하면 도시는 어떤 대상을 은폐하기 위해 행정력을 소비하고 있는 것 같다. 대도시의 야경 또한 환상적인 인공 경관이자 도시의 민낯을 감추는 기발한 장치다. 화려한 불빛만 살아남는 밤의 도시는 어두운 곳을 자연스럽게 가리고 필요한 경우 몇 개의 조명 장치를 사용해서 화려한 도시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리처드 윌리엄스는 책 '무엇이 도시의 얼굴을 만드는가'(현암사, 2021)에서 산업혁명 시기 영국 맨체스터의 도시계획을 언급하며 "자본은 깨끗하고 번듯한 중앙도로와 같은 공간은 눈에 보이도록, 노동자 계급의 불결한 공간은 눈에 보이지 않도록 도시를 배치했다"고 지적한다.(63쪽) 머지않아 양동과 동자동은 재개발될 예정이다. 힐튼호텔의 재건축도 추진되는 걸 보면 몇 년 후 이곳의 지형도는 완전히 바뀔 것이다.

이튿날 아침 일찍 호텔 주변을 산책했다. 잘 닦아놓은(정말로 사람들이 쓸고 닦고 있었다) 한양 성곽길을 올라서 백범광장에도 가고 안중근 의사비도 봤다. 산 중턱에서 멀리 바라본 도시는 크고 높은 몇 개의 건물(랜드마크)을 자랑하고 있었다. 산을 내려와서 동자동 쪽방촌을 걸었다. 이른 아침의 골목은 차갑고 고요했다. 지난밤에 다큐 프로그램에서 본 장면들이 겹쳐졌다. 저멀리 택시 한대가 들어왔고 노인은 라면이 가득 든 커다란 봉투와 담요 한 장을 트렁크에 실었다. 방에서 쫓겨났거나 병원에 가는 길이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골목에는 재개발을 반대하는 붉은 깃발이 펄럭였다.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교차한다.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동네에서 쫓겨나고 싶지 않아서 재개발을 반대한다(하지만 임대주택이 주어지는 공영개발은 찬성한다). 건물주인들은 재개발을 환영하면서도 공영개발은 반대한다. 민간기업이 개발을 해야 경제적 보상 이익이 높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나 저러나 '반대'의 목소리는 '소리없는 아우성'이었다. 골목길을 빠져나와 큰길에 접어드니 다시 매끄러운 빌딩과 카페, 모닝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직장인들의 인파가 몰린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비현실적인 풍경인지 헷갈린다. 마크 피셔는 책 '자본주의 리얼리즘'(리시올, 2016년)에서 자본주의를 조울증에 비유한다. "호황과 불황을 끊임없이 오가는 자본주의는 그 자체로 근본적이고 환원 불가능하게 양극성이어서 흥분 상태의 조증(버블 사고 bubble thinking의 비합리적 과열)과 우울증적 침잠(경제 불황) 사이에서 주기적으로 휘청거린다."(66~67쪽) 가림막 바깥 세상은 조증으로 가득하고 가림막 너머 세상은 우울증으로 치부하는 도시의 이분화 장치는 점점 가속화되어간다. 저자가 말하는 '쾌락주의적 우울증'이다. 양동과 동자동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현실에는 여전히 존재하는 빈곤, 고층 건물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우울한 도시 풍경은 우리가 그것을 부정한다고해서 결코 말끔히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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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 여행에서 힐튼호텔을 보러 갔다가 쪽방촌을 보았다. 세계적인 도시 서울의 모더니즘 호텔건축과 쪽방촌의 빈곤은 너무나도 선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대구로 돌아오는 차안에 다시 힙합이 들린다. "…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냐 …"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말 중에 한 구절이 귀에 박힌다. 내가 발을 딛고 선 땅에서 꾸준히 살아보자는 소박한(어쩌면 거창한) 꿈이 과연 가능한 걸까. 최현숙의 말처럼 "홈리스의 삶은 생애 내내 꽁무니에 붙은 채 끊어지지 않고 길어지기만 하는 서사의 실타래"다.(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후마니타스, 2021. 312쪽) 빈곤을 눈앞에 두고 디자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디자인도 최근에는 공공디자인이라는 미명 아래 환경을 미화하고 가꾸는데에 힘을 쏟는다. 가림막을 세우고 시민들의 착시를 만들어내는 기술이 디자인의 역할이라면 어딘가 허무함이 밀려든다. 애초에 디자인은 자본을 전제해야 성립하는 운명이리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팔 수 있는 상품이나 서비스는 없다. '라이프 스트로'(휴대용 물 정수기)로 대표되는 적정기술이라는 화두를 던지기도 하지만, 디자인이 기업과 자본, 문명의 선봉장임을 내세우는 데에는 주저함이 없다. 그래서 복잡하다.

재개발, 도시재생이라는 용어가 난무한다. 디자인은 그곳에서 꽤 유용하다. 도시를 아름답게 꾸미고 장식하는 일이기도 하고, 어렵고 복잡한 도시 문제를 해결하는 서비스디자인 방법론을 내세우기도 한다. 이럴 때일수록 디자이너가 도시 빈곤의 메커니즘을 짚어내고 장소의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너무 순진한 생각일까. 1980년대의 올림픽 난민처럼 2022년에도 재개발 난민, 도시재생 난민이 여전하다. 도시의 삶에서는 어느 누구도 난민이 되지 않으리라 보장하기 어렵다. 빈곤과 디자인에 대한 여운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정재완 <북 디자이너·영남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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