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형의 스포츠와 인문학] 아타락시아 올림픽…편파판정으로 화가 오르면 내가 좋아하는 다른 것으로 몰입하는 전략을 짜자

  • 박지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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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3-11   |  발행일 2022-03-11 제37면   |  수정 2022-03-11 08:41

쇼트트랙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계주 5천m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이 중국 베이징 메달 플라자에서 열린 메달 수여식에서 단상에 올라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사이자 작가인 디펙 초프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인간이 만약 '무엇을 해서' 혹은 '무엇 때문에' 행복해진다면 그것은 진정한 행복이 아닐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 행복은 그 '무엇'이 사라지는 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란 거다. 


사실 이건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이치다. 술을 마시면 그 순간은 좋지만, 다음 날은 숙취 때문에 평소보다 더 고생을 하게 된다. 휴가는 환상적이지만, 그 뒤의 출근은 평소보다 더 극한의 스트레스를 불러온다. 어린 여자와 바람을 피우던 친구 하나는 너무나 에너지 넘쳐 보이더니, 결국 그 여자가 떠나가자 극도의 우울증에 시달리며 약을 처방받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또 다른 영적 지도자 에크하르트 톨레는 입버릇처럼 말한다. "'자신(ego)'를 버리세요. 모든 고통과 분노는 자신에게서 비롯됩니다." 생각해보면 정말 맞는 말이다. 우리가 분노와 좌절에 빠져 스스로에게 던지는 말을 생각해보라. '난 무시를 당했다' '난 내가 싫다' '난 능력에 비해 저평가되어 있어'. 이 문장들은 모두 '나'로 시작하고 있다. 

그러니 만약 우리가 '자신'을 버릴 수만 있다면 화날 일도 슬플 일도 전혀 없게 된다. 무시를 당한 사람도, 싫은 사람도, 저평가된 사람도 깨끗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자신을 버리는 것이 쉽지 않다면 이번에는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의 저서로 눈을 돌려보자. 그는 인간의 궁극적인 해방은 '몰입(flow)'에 있다고 역설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할 일이 없는 여가 상태에서 가장 불행해진다. 반대로 적절한 난이도의 과제가 주어져 있을 때 인간은 가장 활기차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때 가장 자신을 버리기 쉽다는 말일 테다. '무아지경'이라는 말이 예부터 있는 걸 보면, 이 사실은 딱히 최근에 밝혀진 것도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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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은 오랜 세월 '금메달' 때문에 행복해 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금메달을 뺏겨서' 혹은 '못 따서', 그것 때문에 극도의 분노와 허탈감을 경험하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가만히 손익 계산을 해보면 금메달을 따서 기뻤던 기억을 다 더해봐도, 금메달을 억울하게 빼앗겨서 빡쳤던 그 분노의 합에 미치지 못할 것만 같다. 그래서 한 친구는 선언했다. "나 이제 올림픽 다시는 안 봐. 편파판정 스트레스, 다시는 겪기 싫다." 친구는 드디어 디펙 초프라의 경지에 들어선 것 같았다.

그러나 난 이번에도 올림픽을 봤다. 그러면서도 이제 분노할 일은 없었다. 에크하리트 톨레의 교훈을 가슴에 새겼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버리세요. 모든 고통과 분노는 조국에게서 비롯됩니다." 
물론 지금도 난 한국 선수들을 주로 응원하긴 한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선수들이고 가장 사랑하는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과 내가 국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는 순간 헛된 집착을 모두 버리게 된다. 전국체전 보다가 아는 선수가 지면 "오오, 저 선수를 이긴 더 대단한 선수가 있었네"하고 말지 않나? 대한민국만 잊을 수 있다면 올림픽도 고작 전 세계 체전에 불과할 뿐일 것을.

말도 안 되는 편파판정 따위가 나와 화가 날라치면 그땐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의 교훈을 떠올리면 된다. 빨리 TV를 끄고 내가 좋아하는 다른 것으로 몰입해 들어가는 전략을 펼치는 것이다. 

이때 조심해야 할 것이 화가 난다고 해서, 술을 마시거나 야식을 흡입한다거나 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라는 거다. 그것은 다음날 정신적 피로·육체적 붕괴까지 경험하게 되는 최악의 결과를 낳게 된다. 

우리는 단지 몰입해야 한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바로 그 일로. 내가 가장 쉽게 내 국가와 내 응원팀과 내 대통령 후보, 궁극적으로는 내 자신을 잊을 수 있는 바로 그곳으로.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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