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현준의 시네마틱 유니버스] '장애인 이동권 투쟁보고서 : 버스를 타자!' 다시 이 영화를 주목하는 이유

  • 권현준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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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4-15   |  발행일 2022-04-15 제39면   |  수정 2022-04-15 08:19
20년 전 그 다큐 영화의 장면처럼…한국 장애인 현실은 여전히 제자리걸음
이동권 보장 투쟁모습 생생히 담은 작품
장애 장벽 허문 아카데미 시상식과 대조
장애인 등장 作 '코다' 작품상 등 석권
청각장애 남배우 연기상 수상도 눈길
할리우드와 한국 현실 묘한 괴리감
영화·미디어가 순기능으로 작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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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이동권 투쟁보고서 : 버스를 타자!'는 2001년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다. 제목처럼 영화는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투쟁 과정을 충실하게 담고 있다. 이 영화를 떠올리게 된 건 최근 벌어지고 있는 장애인들의 시위가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얼마 전에 있었던 94회 아카데미 시상식 때문이었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시상자로 등장한 윤여정 배우, '파워 오브 독'을 연출한 제인 캠피온 감독의 여성감독 최초 감독상 2회 수상 여부, OTT플랫폼 영화의 작품상 수상 여부, 러시아의 침공으로 고통 받는 우크라이나 국민에 대한 영화인들의 연대 등 주목할 만한 여러 이슈가 있었다.

결국 '킹 리차드'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윌 스미스의 폭행사건이 모든 이슈를 짚어 삼켜버렸지만, 그럼에도 '코다'의 작품상과 각색상 수상, 그리고 이 영화에 아버지 역할로 출연한 트로이 코처가 남성 장애인 배우로는 최초로 연기상을 수상한 것에 대해서는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코다(CODA)는 청각장애인 부모를 둔 비장애인 자녀를 뜻하는 'Children of Deaf Adult'의 약자라고 한다. 할리우드 제작 콘텐츠 중 장애인 캐릭터는 단 2%에 불과한데, 그 2% 중에서도 겨우 5%만이 실제 장애인 배우가 연기하는 상황이다. 그만큼 장애인 배우들이 할리우드의 사각지대에 놓여있기에, 이 영화의 수상 결과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아카데미는 아시아 영화로는 최초로 작품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아시아인이자 여성감독으로는 최초로 감독상을 수상한 '노매드랜드'의 클로이 자오 감독 등 인종, 젠더, 장애 등 다양성을 넓혀 가려는 의지를 꾸준히 보여 오고 있다. 이번 시상식의 하이라이트였던 '코다'의 작품상 수상 또한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읽힌다. 그런데 이 환영할 만한 수상결과는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애인의 이동권 투쟁과 오버랩되며 묘한 괴리감으로 다가온다. 아카데미로 대변되는 할리우드의 변화와는 별개로, 한국의 현실은 20년 전에 제작된 고 박종필 감독의 영화 '장애인 이동권 투쟁보고서 : 버스를 타자!'의 이야기와 달리진 것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보고서 : 버스를 타자!'는 공개 당시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많은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다. 이는 최근 다양성을 넓혀가는 아카데미 시상식의 흐름과도 닮아있다. 그렇지만 당시 영화인들의 지지와는 달리, 지금 장애인의 현실은 그다지 나아진 것이 없어 보인다. 영화에서는 장애인들이 이동권 확보를 위해 왜 시위에 나서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벽에 부딪혀 왔는지에 대해 '보고서'라는 영화제목처럼 생생하게 보여준다. 장애인들의 이동권 보장 투쟁이 전면적으로 시작된 시기는 2001년이다. 당시 장애인 노부부가 아들 집에 가기 위해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수직형 리프트를 탔다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1명이 사망하였다.(그 이전에도 추락사고는 있었다) 이를 계기로 장애인의 이동권 투쟁이 본격화되었다.

러닝 타임이 채 한 시간도 안 되지만, 이 영화의 많은 부분은 장애인들의 시위 모습으로 채워진다. 어쩌면 다소 반복적이지만, 이는 오히려 변하지 않고 반복되는 답답한 현실을 은유하는 매우 영화적인 장치로 작동한다. 또한 장애인들의 시위장면처럼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이 공무원과 대화 장면인데, 이 역시 마찬가지다. 민원 전화를 하면 이 부서, 저 부서로 넘어가며 하염없이 기다려 본 우리들의 경험처럼 장애인들은 서울시, 보건복지부, 국무총리실을 잇따라 만나지만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에 또 분노하며 다시 길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게 된다.

물론 지금까지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교통체계가 많이 개선되어 온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장애인은 소수이기 때문에 이 정도면 되지 않았느냐는 시혜적인 접근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로서 이동권을 명시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 2005년 제정되었다. 법의 취지처럼 이동권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동등하게 누려야 한다. 그런데 같은 거리를 이동함에도 비장애인은 20분, 장애인은 1시간이 소요된다면 이는 동등한 권리를 누린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이동권은 매우 기본적인 권리다. 이동할 수 있어야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문화도 누릴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고립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생존권과 직결된다.

문제를 조정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동권 시위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싸움이 아니다. 20년 전 영화의 한 장면에서 시위를 지켜보는 비장애인 시민은 이렇게 말한다. '시민을 볼모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20년이 지났지만, 그 말은 또 반복된다. 간극은 여전하다. 한 정당의 대표는 오히려 이를 부추기는 듯하다. 이렇게 해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어쩌면 가장 큰 문제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사회 전반의 문화가 아닐까. 그 동안 장애인에 관한 영화들은 장애인 스스로가(혹은 주변의 도움으로) 장애를 극복하고, 이를 통해 공동체와 화합하는 일종의 감동 스토리가 많았다. 그렇지만 이러한 서사는 자칫 장애인의 현실을 왜곡하는 착시효과를 일으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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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현준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
최근 제작한 영화 '복지식당'(4월14일 개봉)은 한 경증장애인(으로 분류 받은)이 장애인 관련 혜택을 얻기 위해 중증장애인이 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를 연출한 정재익 감독 또한 장애인 당사자로서,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그만큼 영화에서는 장애등급제의 모순 등 장애인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순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만드는 매개가 될 수 있는 건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더 많은 영화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할 수 있길 기대한다.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

※'장애인 이동권 투쟁보고서 : 버스를 타자!'는 OTT플랫폼 '웨이브'에서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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