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의 이면…글로벌 플랫폼 하도급 기지화 우려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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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6-02 07:26  |  수정 2022-06-02 07:31  |  발행일 2022-06-02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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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회 칸국제영화제가 한국영화 두 편에 주요 부문 트로피를 안기면서, 또 한 번 한국의 문화적 위상을 높였다. 많은 사람이 한류를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했지만, 오늘날 한류는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적인 팬덤을 형성하는 주류의 중심에 섰다. 고무적인 건 영어를 사용하지 않은, 한국의 특징을 고스란히 살린 콘텐츠들이 더욱 각광 받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 기꺼이 자막을 읽고 한글을 배우기까지 한다. 하지만 콘텐츠 그 자체가 지속적인 생명력을 보유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려면 선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K-콘텐츠의 실제와 허상

지식재산권에 발 묶인 K-콘텐츠
넷플릭스 '오겜' 국내 제작사 수익 10% 불과
디즈니+도 투자시 매절계약으로 저작권 독점
영상 콘텐츠 '흥행 잔치' 소외에 확장성 한계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1년 상반기 지식재산권(IP) 무역수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난해 상반기 지식재산권 무역수지는 8억5천만 달러(약 1조232억원)로 흑자 전환됐다. 그중 음악·영상 부문 흑자는 3억1천만 달러(약 3천733억원)로 2020년 같은 기간보다 40.2% 급증해 반기 기준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이는 방탄소년단이나 영화 '승리호' 등 한류 콘텐츠 수출 증가에 기인한다. 하지만 지식재산권 자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콘텐츠 분야는 상황이 좋지 않다.

특히 영상 콘텐츠는 그 흥행 정도에 비해 미래 확장성은 크게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음악과 영상은 주로 유튜브, 넷플릭스 등과 같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합법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국내 콘텐츠 제공자의 수익은 제한되고, 플랫폼 정책 변화에 따라 확장 가능성이 제한될 수 있는 한계가 있다. 그 예가 넷플릭스가 투자한 '오징어 게임'이다. 국내 비독점 유통과 해외 독점 저작권을 모두 넷플릭스가 갖고 있다. 일종의 매절(買切) 계약이다. 매절 계약은 저작물에 대한 대가를 미리 일괄 지불하고 이후 활용에 대해 별도의 금전적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계약 형태를 말한다.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을 통해 창출한 가치가 무려 10억 달러(약 1조3천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국내 제작사는 계약에 따라 제작비(약 260억원)의 110%만 받고 별도 인센티브는 받지 못했다. 흥행한 콘텐츠에 대한 확장성을 함께 누리지 못했다는 얘기다. 물론 국내 제작사에 선뜻 거액의 제작비와 자율적인 창작 환경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보상은 충분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문제는 계약 그 자체에 있다. 창작자의 고유 권한인 IP를 포기함으로써 그 이상의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방법 없이 그저 그들의 관대한 처분만을 기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기준이 관례로 굳어져 계속 반복된다면 한류는 글로벌 플랫폼의 하도급기지로만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11월 국내에 상륙한 디즈니+도 창작자의 모든 권리를 양도하는 매절 계약을 맺고 있다. 결국 K-콘텐츠는 춤추는 곰의 역할을 맡고 돈은 글로벌 플랫폼 회사가 벌게 된다는 비관적인 해석을 가능케 한다.

◆한류 콘텐츠의 발전 방향

토종 플랫폼으로 新성장판 열어야
국내 웹툰 새 시장 개척…원천IP 바탕 성장
영화·드라마화 '2차 저작권' 생태계도 구축
네이버·엔터社 등 자체 콘텐츠 플랫폼 잰걸음

한류 콘텐츠의 IP 운영이 많이 뒤처진 가운데 의외로 선전하는 분야도 있다. 바로 웹툰이다. 인쇄만화가 온라인 환경으로 급속히 이동하는 가운데 웹툰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선보인 국내 포털업체들은 만화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냈고, 만화의 본고장인 일본에서 크게 성공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모바일 환경에 익숙한 사용자에게 만화 콘텐츠를 편리한 인터페이스로 제공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웹툰 플랫폼은 저작권에 제약이 없는 원천 IP를 획득할 수 있어 사업 확장에 어려움이 없다. 성공한 웹툰은 캐릭터화 또는 드라마(영화)로 만들어져 2차적 저작권을 생산하고, 이는 작가와 웹툰 플랫폼 모두에 수익을 안겨 준다. '스위트홈' '경이로운 소문' '여신강림' '이태원 클라쓰' 등의 경우처럼 이미 만화 독자에게 검증받은 스토리의 2차 저작물 생산은 영상 콘텐츠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면서 한국 콘텐츠 생태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네이버는 하이브와 제휴해 브이라이브와 위버스를 결합한 플랫폼을 만들었다.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는 방탄소년단을 필두로 케이팝 콘텐츠를 한국 플랫폼으로 제공할 때 발생하는 시너지 효과를 노렸다. JYP엔터테인먼트도 지난해 IP 플랫폼 비즈니스를 위한 자회사 JYP Three Sixty를 설립했고, SM 엔터테인먼트와 공동으로 온라인 전용 콘서트 전문회사인 비욘드 라이브 코퍼레이션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 모든 변화는 원천 IP의 확보만큼이나 IP 유통채널인 플랫폼의 중요성을 인식한 결과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하나의 성공한 콘텐츠가 스스로 하나의 세계관으로 자리잡아 가기 위해서는 원천 IP 확보와 활용 전략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신인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창작 풍토의 정착, 투명하고 합리적인 수익 분배와 끊임없는 투자,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미디어 플랫폼 구축 등이 종합적으로 이루어질 때 미디어 제국으로서의 한류 콘텐츠가 완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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