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범의 시선] '딱딱한 사고'는 위험하다

  •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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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2-20 06:54  |  수정 2023-02-20 06:55  |  발행일 2023-02-20 제26면
뇌과학자 "이념, 도박 비슷"
중독되면 뇌 기능에 문제
현실 왜곡하는 망상 위험
선악, 도덕으로 법치 외면
'나만 옳다'는 생각 버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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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범 (편집국 부국장)

"뭐든 좋으니, 도박과 마약은 하지 말라." 최근에 만난 한 뇌과학자가 제자들에게 늘 강조한다고 전한 말이다. 도박과 마약은 정신과 몸을 망가뜨린다며 '절대 금기'라고 했다. 불법 여부를 떠나 뇌 기능에 문제를 일으키는 게 도박과 마약이다. 마약의 위험성은 '좀비 랜드'로 불리는 미국 필라델피아 켄싱턴 거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팔다리를 축 늘어뜨리고 고개를 들지 못하거나, 허리를 과하게 구부린 채 가만히 있는 사람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마약으로 뇌 기능 일부가 정지돼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모습이다. 괴기스럽기 짝이 없다. 도박이 뇌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도박을 하면 도파민 등 뇌 속의 마약 물질이 분비된다. 마약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자극'을 원하게 되고, 결국 중독에 이르게 된다. 뇌과학자는 도박의 정신 파괴를 얘기하면서 "뇌과학 측면에서 보면 도박 중독과 이념 중독이 비슷한 점이 있다"고 했다. 흥미로우면서도 무겁게 다가온다. 한국 사회에 던지는 경고 아닌가.

언뜻 도박과 이념을 연결 짓는 것은 무리(無理)로 보인다. 도박과 달리, 이념을 따르는 게 불법도 아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현실로 들어가면 도박만큼이나 이념 중독의 위험성을 보게 된다. 이념으로 무장한 세력들이 지금 대한민국을 어떻게 만들고 있나. 서로 다른 세상을 만들고 있다. '태극기 부대'나 '개딸(개혁의 딸)'이 다 그렇다. 지난 16일 국회 법사위에서 나온 말도 이념의 무서움을 보여준다. 검찰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날이다. 민주당 간사인 기동민 의원은 "시중에 '악(惡)은 이렇게 거침없이 자기 길을 걷는데 선(善)은 왜 이렇게 끊임없이 자기를 증명해야 하는가'라는 얘기가 있다"고 했다. 민주당 진영을 '선', 검찰과 집권 여당을 '악'으로 규정한 것이다. 다른 세상에 살고 있음을 고백한 꼴 아닌가. 묻고 싶다. 도대체 무엇이 선이고, 악인가. 선악을 판가름하는 도덕적 기준은 무엇인가. 성남시장 재직 시절 비리 혐의로 이 대표의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민주당을 구속하려는 게 아니다. 이 대표가 개인적으로 법정에서 다투면 된다. 선악이나 도덕을 걸고넘어질 문제가 아니다.

이념에 중독되면 망상(妄想)에 사로잡힐 수 있다. 망상은 자기 확신이자 기만이다. 왜곡된 세계를 현실로 믿는 게 망상이다. 이념 중독자들에게 우리 편은 절대 선이다. 우리 편이면 어떤 잘못을 하더라도 지켜주겠다며 맹목적으로 신뢰한다. 상대 진영은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 악 '사우론'일 뿐이다. 문득 문재인 전 대통령이 떠오른다. 문재인 정부 시절 이른바 '대깨문'들은 "우리이니 마음대로 해"라고 외쳤다. 그 결과가 어땠나.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졌다. 지금 민주당 일부 세력들이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구속된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 정무실장에 대한 민주당 정성호 의원의 회유 논란도 연장선상에 있다. 정 의원은 "이대로 가면 (다음 대통령에) 이재명이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죄가 있더라도 덮어질 것이라는 뜻으로도 읽힌다.

국민의힘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전당대회에서 불거진 '대통령 탄핵' '대통령 탈당' '당정 일체' 논란이 불편하기 짝이 없다. 이견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딱딱한 생각'이 국민의힘을 무겁게 짓누르는 모양새다. 이념이나 고정된 사고는 위험하다. '나만이 옳다'고 믿으면 세상을 이분법으로 바라보게 된다. 내로남불이 된다. '나도 틀릴 수 있다'고 인정해야 새로운 길이 열린다.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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