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 청각장애·폐암 4기 차현자씨의 추상화 도전

  • 문순덕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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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22  |  수정 2023-03-22 08:04  |  발행일 2023-03-22 제24면
지난해 폐암 4기 판정 받고 투병
스트레스 풀기 위해 그림 그려
사진작가에서 추상화가로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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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자씨가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폐암 4기로 병마와 싸우는 고난 속에서도 예술의 혼을 꽃 피우고 있는 청각장애인을 만났다. 차현자(67, 대구시 동구 각산동) 씨가 주인공이다.


아파트 초인종을 울리자 예쁜 강아지가 낯선 손님을 향해 날카롭게 짖어댔다. 듣지 못하는 주인을 지키려는 자세가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계속 짖어대는 강아지를 아랑곳하지 않고 차씨는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방에는 미술 작품으로 가득했다.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차씨는 최근 추상화에 심취, 독학으로 혼을 불어넣고 있다. 방바닥에는 물감이 잔뜩 묻은 돗자리에 미완성의 작품이 놓여 있었다.


차씨는 14년 전 친구가 사진을 찍어준다는 제안에 불려 나간 게 계기가 돼 중고 카메라를 구입해 사진 공부를 시작했다. 사진에 열정을 쏟아부으면서 2014년 한국사진작가협회 정회원이 되었다. 2020년부터 소리가 들리지 않기 시작해 지금은 전혀 듣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르면서 독학으로 포토샵을 공부했고, 지난해 3월과 4월에 대구문화예술회관과 구미에서 '꿈, 상상, 현실의 추상'으로 개인전을 가졌다. 여러 차례 상을 받으면서 장애를 딛고 일어선 사진작가로 유명하다.


사진에 열중하던 2022년 10월 폐암 4기 판정을 받았다. 혼자 아픔을 견디기엔 너무 힘들어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을 찾다가 그림 그리기에 도전했다. 사진 작품 액자를 재활용해 아크릴 물감을 풀어 연습하다가 지금은 자신만의 화풍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다.


고향이 강화도인 차씨는 초등학교 때 부모님을 잃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아는 사람이 없는 서울 땅에서 눈에 들어온 인쇄, 도안하는 학원을 찾아가 원장에게 밥만 먹여주면 시키는 일 다 하겠다고 애원해 승낙을 받았다. 원장 집에서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 과외 지도도 해 주고, 낮에는 학원 가서 도안 일을 배웠다. 열심히 노력해 인쇄 도안 자격증을 따고 원장의 도움으로 자립했다. 차씨는 "주변의 권유로 식당을 운영하게 됐고, 결혼까지 해 딸과 아들을 낳았지만, 결국 남편과 헤어졌다"고 토로했다. 차씨는 두 자녀를 위해서 안 해 본 일이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해 이를 악문 차씨의 노력 덕분인지 자녀들은 착하게 자랐다.


차씨는 "투병 중이지만 딸과 아들이 잘 커서 뿌듯하다. 자식이 보물"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대구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딸은 엄마를 적극 지원해 준다. 그림 그리기에 필요한 아크릴 물감, 붓 등을 사 주고, 비싼 카메라도 선뜻 선물했다. 차씨는 지금 자녀의 사랑 속에 청각장애와 암을 예술로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글·사진=문순덕 시민기자 msd5613@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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