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 치킨 튀기던 손으로 음악봉사 ‘60대 부부가 사는 법’

  • 조경희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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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2-03 21:21  |  발행일 2026-02-03
경북 경산시 사동에서 23년째 치킨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손건헌·이연자씨 부부가 가게 안 작은 방에 마련한 연습실에서 연주 연습을 하고 있다.

경북 경산시 사동에서 23년째 치킨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손건헌·이연자씨 부부가 가게 안 작은 방에 마련한 연습실에서 연주 연습을 하고 있다.

손건헌(61)·이연자(60)씨 부부는 경북 경산시 사동에서 23년째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3년 전부터 한 달에 두 번씩 인근 자인요양원을 찾아 음악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손씨는 색소폰 연주 7년 차, 아내 이씨는 드럼과 색소폰 연주 2년 차에 접어든 아마추어 음악인이다. 중년의 고비를 넘기고 60대를 맞이한 이 부부는 음악과 봉사로 더욱 단단한 부부의 연을 이어가고 있다.


봉사의 출발점은 손씨의 오래된 바람에서 시작됐다. 치킨 배달을 하던 어느 날, 색소폰을 연주하던 한 고객을 보며 '언젠가 나도 악기를 불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남았다. 당시에는 생계가 버거워 꿈으로만 남겨둘 수밖에 없었지만, 7년 전 우연한 계기로 색소폰을 배우게 되면서 삶의 방향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틈틈이 학원을 다니며 연습하던 그는 이후 가게 안 작은 방에 방음 장치를 한 연습실을 둘 만큼 연주에 진심이었다.


아내 이씨에게 음악은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된 계기가 됐다. 오랜 시간 가게 일에 매달려 지내다 우울증을 앓기도 했던 그는 2년 전 드럼을 배우며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기쁨"을 느꼈다고 했다. 이후 남편과 색소폰까지 배우며 음악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일상의 일부가 됐다.


이 부부에게도 한때 버거운 시절이 있었다. 인근에 아파트가 들어설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가게를 얻었지만, 공사는 부도로 중단됐다. 손님이 끊긴 가게에서 대출 이자는 쌓여 가고, 빚으로 버텨 보려 했으나 상황은 쉽지 않았다. 사채까지 손을 대며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네 식구는 가게에 딸린 작은 방에서 함께 생활하기도 했다. 악몽 같은 순간도 버티고 견디다 보니 지나갔다.


요양원 봉사와의 인연은 지인을 따라 몇 차례 방문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다 개인 사정으로 3개월가량 찾지 못하게 되자 손씨는 어르신들이 그리워졌다. 떡을 해서 찾아가기도 하고, 치킨을 튀겨 들고 찾아가기도 했다. 장비도 없이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르고 돌아오는 날들이 이어졌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일찍 여읜 손씨에게 요양원 어르신들은 어머니 같은 각별한 존재였다.


"어르신들이 손씨 부부 오기만 기다린다"는 요양원 원장의 말에 힘을 얻은 손씨는 본격적으로 장비를 챙겨 요양원 봉사를 시작해 3년째 이어가고 있다. 부부는 매달 두 번 금요일 오후가 되면 가게 문을 닫고 악기와 장비를 챙겨 요양원으로 향한다. 장사가 한창일 시간에 문을 닫는 일은 쉽지 않지만, 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날은 손익으로 계산할 수 없을 만치 기분이 좋았다.


손씨는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꽃마음 봉사단'을 꾸렸다. 손씨 부부를 포함해 성명희·이송희·김만자씨 등으로 구성된 작은 봉사단이지만, 요양원에 울려 퍼지는 음악만큼은 작지 않다. 치킨집에서 시작된 이 부부의 색소폰 소리는 오늘도 요양원 어르신들의 오후를 따뜻하게 채우고 있다. 손씨는 "돈으로 따지면 봉사 못한다"며 "봉사 다녀오는 날에는 아내가 우선 좋아하고 나도 기분이 참 좋다"고 했다.


글·사진=조경희시민기자 ilikelak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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