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범의 시선] 생각할 게 많은 문명사회 '대구'

  •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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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4-16 19:36  |  수정 2023-04-17 06:59  |  발행일 2023-04-17 제26면
베토벤 '합창' 종교편향 논란
세계적 웃음거리로 전락
국힘, 홍 시장 상임고문 해촉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 위축
TK 변화의 계기가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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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범(편집국 부국장)
어쩌면 변화를 위한 축적일 수 있다. 최근 대구에서 일어난 몇몇 사건들이 그렇다.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문제들이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의 종교 편향 논란은 충격을 줬다. 대구시립교향악단과 합창단이 공연키로 했던 합창 교향곡에 대해 종교화합자문위원 한 명이 종교 편향을 이유로 반대했다. 결국 대구시립교향악단과 합창단은 수성아트피아 재개관 공연 무대에 오르지 못하게 됐다. 대구시 조례에 종교화합자문위는 만장일치제로 규정돼 있다.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부결된다. 세계적인 웃음거리다. 종교적인 이유로 합창 교향곡이 공연되지 못한 사례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다. 합창 교향곡이 금지곡이 된 적은 딱 한 번 있었다. 중국이 문화 대혁명 시대에 합창 교향곡을 반혁명적인 음악으로 간주하고 금지했다. 중국도 종교적인 이유를 들지 않았다. '반혁명'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종교가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였다.

합창 교향곡의 종교 편향 논란은 민주주의 본질적 가치인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를 돌아보게 한다. 다양성의 가치는 사회에 존재하는 다른 민족, 언어, 종교, 문화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데 있다. 다양성이 사라지면 한 가지 관점이 지배하게 된다. 비판적 사고나 창의적 해결책을 찾기 어렵게 한다. 표현의 자유는 다양성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수단이다. 사회적 대화와 협력을 가능케 한다. 개방과 포용을 지향하는 대구로선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대구시는 합창 교향곡 사태를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 대구를 닫힌 사회로 만들려는 그 어떤 시도도 막아야 한다.

정치도 변곡점을 맞았다. 국민의힘 김기현 지도부가 홍준표 대구시장을 당 상임고문에서 해촉했다. 전광훈 목사와 관련한 홍 시장의 비판을 무겁게 받아들이기는커녕 입막음하려는 조치이다. 홍 시장은 '전광훈 우파 천하통일'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김재원 최고위원의 징계와 전 목사와의 손절을 촉구했다. 홍 시장은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표와 대선 후보까지 지낸 인물이다. 보수의 상징성을 감안하면 오히려 존중해야 마땅하다. 더욱이 홍 시장을 해촉하는 자리에 대구 출신의 원내대표와 지명직 최고위원도 있었다. 대구시민을 대표하는 시장이 어이없는 이유로 해촉되는 데 동조했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대구시민의 자존심은 안중에도 없는 것인가.

'친윤' 일색의 국민의힘 지도부는 지금 방향을 잘못 잡고 있다. '윤심(尹心·윤석열 대통령 의중)'을 너무 의식한 탓인지 다양성을 잃었다. 이준석 전 대표, 유승민 전 의원, 나경원 전 의원, 홍 시장까지 엉뚱하게도 보수의 주자들을 몰아내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 전 대표와 홍 시장은 젊은 층에게 인기가 높다. 2030세대의 지지율이 급락하는 마당에 젊은 층의 지지를 흡수할 수 있는 이 전 대표와 홍 시장을 무시하고 있다. 젊은 층에게 다가가겠다는 국민의힘 지도부의 말이 도무지 진실로 느껴지지 않는다. 최근 TK지역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에 역전당한 것도 심상찮은 조짐이다. 보수 텃밭인 TK에서 국민의힘이 민주당에 밀리는 일은 처음일 것이다. TK 유권자들이 좀 더 세밀하게 정치를 살펴보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국민의힘은 물론 TK 의원들에게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다.

대구가 생각할 게 많은 도시가 됐다. 생각이 실천으로 이어지면 또 다른 '문명사회'가 열린다. 문명은 생각의 결과이자, 원천이다.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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