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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 출신의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우리 문화재의 은근하고 찬란한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며 잠시 포즈를 취했다. |
그는 유난히 기억력이 좋고 사유의 깊이가 남달랐다. 태어나 처음으로 읽은 역사책을 또렷이 기억하는가 하면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 다녀온 역사 기행지 등 말하는 것에서 막힘이 없었다. 그뿐 아니다. 대개의 사람이 전쟁에서 이긴 승자의 이름만을 기억하는 것과 달리 패망한 나라가 역사에서 어떻게 소리 없이 명멸해 갔는지를 이야기했다. '백제의 미소'를 닮은 듯 온화한 얼굴에 말투는 느리고 겸손했다. 우리 옛것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일생을 쏟아부은 경북 영천 출신의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을 만났다.
지방대 출신 중앙박물관장
'서울대 벽'을 깨다
각종 회의와 결재판 없애는 등
풍부한 실무경력 앞세워 혁신
"박물관 구성원 모두가 전문가
역량 발휘할 기회 만들어줘야"
이건희 컬렉션 美·英서 러브콜
국격 알릴 대형 해외전시 추진
◆간송미술관 옆집 아이
6남매 집안에서 유일한 사내아이로 태어난 윤 관장은 어려서부터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아버지는 마을에서 효심 깊은 농부로 소문이 자자했다. 하지만 아들에 대해서만큼은 항상 엄격하고 준엄했다. '공부해야 한다' '집안을 책임져야 한다' '나쁜 짓 하면 안 된다' 등의 말을 수시로 강조했다. 그러더니 윤 관장이 초등 3학년이 되자 더 많은 친구를 사귀고 식견을 넓힐 수 있을 것이라며 아예 서울 큰형님네로 유학을 보냈다.
너무 일찍 부모를 떠나 온 윤 관장은 낯선 타지에서 조금씩 말을 잃어 갔다. 골목길 어귀에서 한참을 홀로 배회했다. 이때 회색빛 담장의 옆집이 눈에 들어왔다. 최고급 자재를 사용해 만든 옆집 건물은 당시로서는 생소한 서구적 건축물이었다. 외관 장식을 최소화하고 여백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었다. 윤 관장은 "처음엔 간송미술관(당시 보화각)인 줄 몰랐다. 그 집을 보면서 미술숙제도 하고 상상의 나래도 펼치면서 일찍 부모를 떠난 외로움을 달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옛사람들과의 만남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그는 대구로 내려와 누나들과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협성중·덕원고를 거쳐 경북대 사학과로 진학했다. 법대·상대를 원했던 아버지의 뜻에는 못 미쳤지만, 하고 싶은 학문의 길이었다. 화염병과 최루탄이 날리며 캠퍼스가 어수선하던 시절, 그의 마음은 자주 경주로 향했다. 마침 대구 자췻집은 동부정류장과 맞닿아 있었다. 틈이 날 때마다 정류장으로 가 경주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운명에 이끌리듯 그는 천년의 역사가 퇴적된 그곳을 걷고 또 걸으며 옛사람들이 남긴 흔적을 찾아 나섰다.
윤 관장은 "치열했던 1980년대 정치 상황에서 경주로 갔던 것은 어찌 보면 현실도피였다. 차에서 내려 무작정 발길 닿는 곳을 걸으며 경주를, 역사를, 인생을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처음에는 답답한 마음에 답사인지도 모르고 마냥 좋아서 다녔는데, 대학원에 진학하고 보니 경주에서 보낸 그 시간이 커다란 재산이 되어 있었다"고 했다.
◆대구박물관서 첫 출발
대구박물관 학예연구사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특별전이 열리던 어느 날, 초등생이 단체로 관람을 왔다. 가만히 보니 자신이 적어 둔 패널 글을 공책에 옮겨 적고 있었다. 순간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멍해졌다. 윤 관장은 "현타가 왔다고나 할까. 아, 내가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구나. 어쩌면 그 패널의 내용도 어딘가에서 보고 대충 적은 것일 수 있는데, 애들과 선생님은 국립박물관이라는 이유로 숙제를 하고 있었다"며 책임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이 일로 '나는 공부를 왜 할까'라는 진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대학교수를 목표로 두고 잠시 건너가는 곳쯤으로 생각했던 박물관 업무에 대해 다시 성찰하는 계기가 됐다. '논문을 쓰고 강의를 한다는 것은 잘 모르는 사람에게 좀 더 알려주기 위한 것인데 학예연구사 업무도 마찬가지 아닐까' '어쩌면 소수가 읽고 마는 논문을 쓰는 것보다 더 많은 대중을 상대로 전시하고 기획하는 일이 더 의미 있는 것은 아닐까' 등의 생각을 했다.
대학시절 치열했던 정치상황
'역사'는 현실도피처였다
"당시 틈만 나면 무작정 경주행
발길 닿는 곳 걸으며 인생 배워
그 시간들이 큰 재산으로 남아
지방이 갈수록 소멸된다는 건
우리의 전통이 사라진다는 것
지역문화 지켜나가는 노력 절실"
◆13개 박물관 총괄업무
평생 박물관에서 학예 연구를 해온 그는 지난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취임했다. 대구·청주·경주 등 산하 13개 소속 박물관을 총괄하는 것도 그의 임무다. 그간 서울대를 중심으로 한 인사들이 역사학계와 문화재 분야에서 주요 기관장을 맡아온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박물관 실무경험이 많은 만큼 그는 점진적이지만 정확한 지점에서 개혁의 물꼬를 열어 가고 있다. 가장 먼저 한 일이 각종 회의와 결재판을 없앤 것이다. 박물관 구성원 모두가 전문가이기 때문에 각자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기회를 줘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촉각 안내판을 만들고, 교육공간을 마련하는 등 장애인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도 앞장서 진행하고 있다.
윤 관장은 "지금 MZ세대들은 미술관에는 가지만 상대적으로 박물관은 찾지 않는다. 제도화된 학교 교육 속에서 박물관은 무겁고 고루하다는 생각이 크기 때문이다. 박물관이 유물을 전시한 곳을 넘어 동시대인들과 호흡하고 사유하고 놀이하는 공간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로 가는 'K문화재'
대구박물관은 현재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기증품을 전시하는 '어느 수집가의 초대' 순회전으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7월9일까지 열리는 전시회는 1994년 박물관이 문을 연 이래 최다 관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광주에 이어 대구서 열리고 있는 이건희 컬렉션은 미국·영국 등 해외에서도 전시 요청이 밀려들고 있다. 현재 미국 워싱턴·시카고미술관, 영국 브리티시뮤지엄 등 세 곳과 대규모 전시회를 협의 중이다.
윤 관장은 "최근 태평양도서국 정상회의에 참석한 정상들의 영부인 8명이 박물관을 찾아 한국의 미를 감상했다. 단군 이래로 이처럼 많은 영부인이 한국을 찾아 문화예술을 나누는 것이 극히 드물었는데, 그만큼 우리의 국격이 높아지고 융성하다는 뜻일 것"이라며 "공동체가 함께 나누고 공유하는 정신이 담긴 우리 문화야말로 세계적이라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범국가적 과제인 지방소멸의 문제를 문화적 관점에서 접근하기도 했다. 윤 관장은 "먹고살기 바빠 죽겠는데 무슨 문화 타령하냐고 하지만 지방이 소멸한다는 것은 결국 우리의 문화가 위태롭다는 것이다. 지역의 박물관을 중심으로 지역의 문화를 발굴하고, 끊어지지 않도록 그 지역의 문화를 지켜간다면 지방소멸의 문제도 새로운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사진=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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