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전 11시 천안 독립기념관 애국시·어록비공원에서 열린 독립운동가 우재룡 지사의 어록비 제막식에서 참석자들이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
대한광복회 지휘장 백산 우재룡 독립지사의 어록비가 독립기념관 어록비공원에 제막됐다.
백산우재룡선생기념사업회는 4일 오전 11시 천안 독립기념관 애국시·어록비공원에서 독립운동가 우재룡 지사의 어록비 제막식을 가졌다. 백산 선생의 어록비는 107번째로 이곳에 세워졌다.
이날 제막식에는 김능진 광복회 부회장, 한시준 독립기념관장, 최봉태 백산우재룡선생기념사업회장, 정기숙 계명대 명예교수,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 정대영 광복회 경북도지부장, 정인열 대구가톨릭대 교수, 우대현 독립운동정신계승 사업회 상임대표(우재룡 지사 장남) 등이 참석했다.
1884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난 우재룡 지사는 18세가 되던 1902년 대한제국 군대인 대구진위대에 입대했다. 1907년 의병대인 '삼남의진'에 투신, 팔공산 유격대장으로 활동하던 중 일본군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1915년에는 대구 달성공원에서 국내 최초의 무장 항일 비밀결사 단체인 대한광복회를 결성, 지휘장으로 활동하면서 경주 우편 마차를 습격해 독립자금 8천700원을 확보하는 전과를 올렸고, 만주에선 길림광복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만주에서는 백야 김좌진 장군과 교류하는가 하면, 상해임시정부 파견 주비단을 조직하고, 군자금 모금 활동을 펼치다 붙잡혀 20여 년 간 옥고를 치렀다.
광복 이후에는 광복회 동지들을 규합해 재건광복회 활동을 하면서 삼남의진 동지들을 추모하는 위령제를 거행하는 등 평생을 독립운동에 투신하고 1955년 72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우재룡 지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고 4년 후엔 묘소를 서울 동작동 현충원으로 이장했다. 2009년엔 국가보훈처와 독립기념관에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날 어록비에는 '조선이 일본의 통치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가능하다. 불가능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한 바 없다. 다만, 국권 회복을 도모하는 것은 조선인의 의무다'라고 새겨졌다.
1921년 11월 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조선총독부 나카시마 유조우 판사의 "무력으로 일본의 통치를 벗어나는 일이 가능한가"라는 물음에, 우재룡 지사가 답한 말이다.
진식기자 jins@yeongnam.com
진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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