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TK 민심, 더는 ‘맹목적 충성’ 없다
비상계엄, 대통령 탄핵, 그리고 조기 대선. 2025년 대한민국은 초유의 정치 격동기를 거쳤고, 그 중심엔 보수정당 국민의힘이 있었다. 국정을 책임졌던 국민의힘은 무너진 민심을 붙잡지 못하고 대통령 임기 중간에 더불어민주당에게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이 모든 혼란을 자초한 책임을 국민 앞에서 명확히 인정하지도, 쇄신의 출발점조차 제대로 내놓지 못한 채 지금 이 순간에도 국민의힘은 표류 중이다. 가장 뼈아픈 지점은 전통적 지지 기반인 대구경북(TK)에서 마저 민심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6·3대선 출구조사에서 TK 지역 국민의힘 후보 득표율은 지난 대선보다 8~9%포인트 가량 하락했다. 대선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TK 민심은 국민의힘과 멀어지고 있다. 이는 '무조건 밀어주던 시대의 종말'을 의미한다. TK 유권자들도 이제 변화와 실질적 성과를 갈구하고 있다는 명백한 신호다. 보수정당에 대한 TK의 충성은 단순한 이념적 결속이 아니라 지역 발전의 기대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나 국민의힘을 포함해 역대 보수 정당은 정권을 잡고도 TK에 대한 실질적 보상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까지 TK는 무려 5명의 대통령을 배출했지만, 각종 경제 지표는 바닥을 헤매고 있다. 대구라고 하면 떠오르는 '1인당 GRDP(지역내총생산) 전국 꼴찌 도시'라는 이미지가 30년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는 게 미안하지만 부끄러운 현실이다. 반면 울산은 GRDP 1위 도시로 유명하다. 가장 최근의 통계치인 2023년 기준으로 울산시민 1인당 GRDP는 8천124만원이었다. 대구(3천98만원)보다 2.6배나 많은 수준이다. 울산에서 대통령을 단 한 명이라도 배출한 적이 있나? 그럼에도 울산은 잘살고 대구는 못산다. 이럴진대 대구시민들이 보수정당에 계속 표를 줘야 하나. 지역 출신 정치인들도 중앙 정치에서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탄핵 정국과 비상계엄 사태 속에서 TK 정치권은 침묵으로 일관하며 지역 대표성마저 상실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TK 청년층과 중도층이 점점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TK에서조차 '변하지 않으면 끝'이라는 메시지의 분명한 울림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이 이 경고를 무시한다면, 내년 지방선거는 물론, 다음 총선에서도 TK에서의 기반은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국민의힘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바로 과감한 혁신이다. 당의 체질을 바꾸고, 지역 일꾼을 재정비하며, 지역 청년들과의 접점을 늘려야 한다. TK 민심은 더이상 '영남=보수'라는 낡은 공식에 따라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힘이 진정으로 TK의 마음을 얻고자 한다면, 우선 대구경북 지역 현안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 TK신공항 건설, 산업 구조 개편, 취수원 다변화 등 지역이 직면한 추진 과제를 서울 중심의 정당 전략이 아닌, TK 고유의 비전으로 풀어내야 한다. 세대 교체와 세력 재편도 주저해선 안 된다. 2030세대가 지지하지 않는 보수는 미래가 없다. 젊고 유능한 지역 인재들을 등용하고, 기득권 정치에 대한 지역 민심의 피로를 해소해야 한다. 당의 '보수 정체성'을 시대에 맞게 재정의하는 것도 필요하다. 안보와 경제만으로는 더 이상 표를 지킬 수 없다. '공정' '다양성' '포용'이라는 가치를 아우르는 새로운 보수로 탈바꿈해야 한다. TK는 과거와 보수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변화를 가장 갈망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TK 민심은 이제 더는 기다리지 않는다. 국민의힘이 텃밭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진정한 각성과 실천적 변화로 응답해야 한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진식기자 jins@yeongn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