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식 정치 에디터
2025년은 대한민국이 지방자치제를 본격적으로 시행한 지 꼭 30년이 되는 해다. 10월 29일은 '지방 자치의 날'이었다. 1995년 지방자치제의 부활은 중앙집권적인 행정체계를 지역주민 중심의 자치행정으로 전환시키는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이 제도의 핵심은 '지역이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며,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구는 그 여정의 중심에서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실험하고 성장해 왔다.
1995년 초대 민선 대구시장과 구청장이 선출되며 대구도 지방자치의 본격적인 문을 열었다. 중앙정부의 하달에 따라 움직이던 행정조직이 지역 유권자의 선택을 통해 구성되면서 시정과 구정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관치에서 자치로의 전환이다. 초기에는 '정치권력의 재편'이라거나 '지역 토호의 부상'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그것조차도 민주주의의 과정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변화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제도화되고, 행정에 대한 감시와 견제 역할을 주민들이 맡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대구는 지방자치 30년의 시간 동안 다양한 실험을 거쳤다. 초창기에는 기반시설 확충과 행정조직 정비에 집중했으나, 2000년대 이후에는 시민참여형 행정이 점차 자리를 잡았다. '주민참여예산제' '동 주민센터 기능 강화' '마을공동체 활성화 사업'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특히 2010년대 들어 도시재생과 관련된 다양한 정책이 대구의 각 지역에서 활발히 추진됐다. 예컨대, 중구 서문시장 일대의 도시재생사업은 상인들과 주민, 전문가, 행정이 공동으로 기획하고 실행에 옮긴 대표적인 주민참여형 프로젝트였다. 남구, 북구 등지에서도 '주민자치회'가 실질적인 권한을 갖고 자치 행정에 참여하면서 자치 의식은 이전보다 한층 성숙해졌고, 풀뿌리 민주주의의 외연도 넓어졌다.
하지만 성과만큼이나 분명한 한계도 존재했다. 우선 여전히 강한 중앙정부의 예산 및 징세권한이다. 국비 의존도가 높아 지역 자치단체가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고, 쥐꼬리 만한 지방세로 자체 수입은 한정적이다. 결국 지방자치단체는 중앙의 눈치를 보며 '자율성'보다는 '수용성'에 더 가까운 형태로 운영돼 왔다.
정치적 다양성의 부족도 문제다. 대구는 특정 정당의 장기 집권이 이어지면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방의회 역시 '거수기'라는 오명을 피하지 못한 채, 집행부의 예산과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승인하는 구조가 반복됐다. 이에 따라 시민들은 "내가 투표해도 바뀌는 게 없다"는 정치적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주민참여의 양극화도 빼놓을 수 없다. 특정 지역이나 계층은 자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반면, 일부 지역은 여전히 관 주도 방식에 의존하거나 소외된 상태다. 마을공동체 사업이나 주민자치회의 운영이 실제로는 '활동가 중심'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가오는 30년은 '성숙한 지방자치'로 도약하는 시기여야 한다. 대구의 지방자치는 지금껏 많은 도전과 실험을 거치며 '풀뿌리 민주주의'의 토대를 다져왔다. 때로는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그 속에서도 지역 주민의 힘은 결코 적지 않았다. 30년의 역사는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학교였고, 우리가 함께 써 내려간 공동체의 일기장이었다.
이제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한 새로운 장을 준비해야 한다. 더 공정하고, 더 참여적이며, 더 회복력 있는 자치를 위해, 시민과 행정이 '동등한 주체'로 만나는 새로운 계약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대구 '풀뿌리 민주주의'의 미래이며, 대한민국 지방자치의 다음 30년을 여는 출발점이다.
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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