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목 시인
스위스 빙하 열차의 기울어진 유리잔을 생각했다
버틸 수 있는 각도, 그런 거 있잖아
결빙 구간이 자주 반복되었다
나는 선로를 따라 쩍쩍 갈라지고
아무렇지 않다는 말이 물이 되어 몸이 몸으로 늘어지고
완전히 누우면 각진 하늘이, 조금 측면으로 기울이면 삐죽이
솟아있는 아파트 옥상과 낙상주의가 적힌 사물함이 보였다
신은 나를 물속에 둔 채로 자주 자리를 비웠다
그럴 때마다
몸을 최대한 동그랗게 말고 그 속에 얼굴을 파묻었는데
나랑 같이 있자
사이프러스 큰 나무들은 비켜서 있다
철 지난 비둘기를 부르고 솟대를 걸고 손톱을 물어뜯고,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열두 번 모으면 사랑해 한번
-김미정 '침목' 부분
이 시는 달리는 기차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거기 누군가 받아놓은, 유리컵 안에 담긴 물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인생 위에 올라탄 몸을 보는 것 같고, 그 속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거기서 보이는 모든 풍경이 달려가고 있는데, 그것이 더불어 오랜 기다림의 형상이라는 것을 안다. 달려가는 기다림이라니. 어쩌면 신은 이 지독한 모순으로만 우리를 통과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난해 영남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이 시를 그렇게 읽었다. 그래서 다시 신춘이다. 쏜살이라는 말이 시간을 일컫는다면 그 과녁은 그 무엇도 아닌 우리 자신일 것이다. 시로 출렁이는 동심원 속에 우리가 있다.
진식
정치 담당 에디터(부국장)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