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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완 유메타랩 대표 |
필자는 소위 말하는 '지일파(知日派)'다. 휴가 때마다 일본을 즐겨 찾고, 일본의 역사와 사상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일본 거주 경험이 있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유년 시절부터 일본 문화에 친숙했던 탓이다. 대학 시절에는 1년가량 일본으로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 유학 당시 오사카에서 느꼈던 친근함과 따뜻함은 필자의 지금을 이루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오랫동안 한국인들에게 일본은, 멀리하거나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역사적 아픔과 갈등으로 인해 복잡한 감정과 관계가 얽혀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홍대나 강남 등 번화가를 걷다 보면 일본어로 된 간판의 식당이나 이자카야를 쉽게 마주칠 수 있다. 심지어 메뉴판의 글씨마저 일본어로 적혀 있는 경우도 많다. 2024년 6월, 뉴진스의 도쿄돔 공연을 통해, 1980년대 일본곡 '푸른 산호초'가 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은 것이나, 과거에는 암암리에나 불리던 '긴기라긴니(ギンギラギンに)'와 같은 곡이, 이제는 공식적으로 방송에서 울려 퍼지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단순한 유행을 넘어, 일본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고 오히려 그들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향유하는 세대, 그리고 그런 시대의 등장이다.
물론 한국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일본의 거리를 걷다 보면 한국 문화의 영향력은 너무나 쉽게 느낄 수 있다. 일본 TV 채널에서는 자연스럽게 한국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고, 한국식 빙수와 양념치킨은 이제 일본 JK(여고생)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로 자리 잡았다. K-POP의 인기는 당연히 말할 것도 없다. 이처럼 양국의 문화는 서로의 일상 속에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2024년 9월27일,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시게루 중의원 의원이 28대 총재로 선출되었다. 당내 온건파로 평가받는 이시바는 그동안 과거사 문제에 반성적 시각을 보이는 등 기존 자민당 지도부와는 다른 면모를 보여왔다. 이러한 변화는 윤석열-기시다 정부 간에 형성된 우호적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최근 양국 정부가 추진해 온 다양한 경제, 안보 협력 방안들이 이시바 총재 체제하에서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미중 갈등이 심화되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한일 양국의 긴밀한 협력은 지역 안정과 평화를 위해 필수적일 것이다.
이웃 나라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 무엇이 나쁜가? 반목과 대립이 아닌 평화와 협력은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 하는 본질적 가치다. 정치인들의 결정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양국 국민들의 마음이다. 과거의 아픔을 극복하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그리고 공동의 미래를 향한 비전을 공유할 때, 우리는 진정한 이웃이자 파트너가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서로의 문화를 공유하는 한일 관계의 미래는 분명 밝을 것이라 생각한다.
마침 내년은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이다. 한일 양국이 손을 잡고 나아갈 때, 우리가 이룰 수 있는 것은 단순한 경제적 이익을 넘어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 나아가 전 세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이며,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유산이 아닐까?
정치권에서 대표적 지일파로 유명한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했던 이야기를 기억한다. '50년의 불행한 역사로 1500년의 우호협력의 역사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던 금언(金言)이다. 필자가 오사카의 작은 동네에서 느꼈던 그 친근함과 따뜻함이 양국 관계 전반에 퍼져나가길 소망한다.서승완 유메타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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