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대구 북구 노곡동 일대 산불 현장에서 소방 헬기 2대가 해가 지기 전에 진화하기 위해 서둘러 이동하고 있다. 일몰 이후에는 안전을 위해 헬기 운항이 제한된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28일 밤 10시, 대구 북구 함지산 아래 아파트 단지 주민들은 베란다 창문에 붙어 산등성이를 주시했다. 암흑 속에 잠겨야 할 산 중턱은 붉은 불줄기가 띠를 두른 채 일렁이고 있었다. 정적을 깬 것은 머리 위를 낮게 가로지르는 둔탁한 헬기 프로펠러 소리였다. 평소라면 일몰과 함께 철수했을 헬기가 야간투시경에 의지해 검은 연기 속으로 몸을 던지고 있었다.
이날 야간 작전의 주역은 국산 헬기 '수리온(KUH-1FS)'이었다. 산림청은 오후 8시부터 밤 11시까지 수리온 2대를 현장에 전격 투입했다. 2018년 도입 후 수리온 2대가 야간 산불 현장에 동시 투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암흑 속에서 18차례나 물을 실어 나르며 총 3만 6천ℓ의 물을 화선 위로 쏟아부었다.
투입 성과는 수치로 고스란히 나타났다. 헬기가 진입하기 전인 오후 8시 기준 19%에 불과했던 진화율은 수리온이 활동한 지 4시간 만인 29일 0시 54%까지 치솟았다. 지상 진화대원이 접근하기 힘든 급경사지의 불길을 상공에서 직접 진화한 결과다. 하늘에 띄운 열화상 드론이 실시간으로 화선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면, 수리온이 그 길목에 산불지연제를 투하하며 민가 확산을 차단했다.
인근 주택가에서 이 상황을 지켜봤다던 주민 박 모(48)씨는 "밤이 되면 불길이 더 번질까 봐 짐을 싸야 하나 고민했는데, 어둠 속에서도 헬기가 물을 뿌리는 걸 보고 마음을 놓았다"며 "밤에 움직이는 헬기는 처음 본 것 같다"고 했다.
그간 산림청은 조종사의 시야 확보가 어려운 야간 투입에 신중을 기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K-2 군 공항과 인접해 지형 파악이 용이했고, 전선 같은 지장물이 없어 투입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2020년 안동과 2022년 울진에서 1대씩 투입돼 성능을 검증받은 수리온은 이번 2대 동시 작전으로 야간 대응력을 입증했다.
임하수 남부지방산림청장은 "수리온이 이번 진압에서 큰 효과를 거뒀다"며 "앞으로도 안전이 확보된 현장이라면 야간 진화에 수리온을 적극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상 진화대원들이 험준한 능선에서 잔불을 정리하는 사이, 함지산 상공을 지킨 수리온의 비행은 도심을 위협하던 화마를 잠재우는 결정적 한 방이 됐다.
박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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