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이 서훈 기준에 대한 전면 재검토 입장을 밝혔다. 권 장관은 "이달 말 공청회를 시작으로 서훈 기준 전반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1962년 만들어진 독립유공자 훈격을 현대적 가치와 역사적 자료에 맞춰 다시 세우겠다는 뜻이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60여년 전 군사정권이 급하게 그어놓은 '낡은 선'을 지워야 보훈 정상화의 길이 열린다. 재검토의 최우선 순위에 경북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석주 이상룡 선생이 있어야 한다. 석주 선생의 서훈은 3등급(독립장)에 머물러 있다.
석주 선생은 전 재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물이다. 만주에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무장독립군 양성의 기틀을 닦았고,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대통령급)을 역임했다. 노비들을 해방시킨 뒤 만주의 혹한 속에 몸을 던진 석주 선생의 삶은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원형이기도 하다. 단순한 투쟁을 넘어 기득권을 통째로 넘긴 석주 선생의 결단은 독립운동사에서 독보적 가치를 지닌다. 일제가 석주 선생의 생가인 임청각에 철길을 놓아 훼손할 만큼 석주 선생은 일제에게 두려운 존재였다. 헌법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돼 있는 데도,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선생을 3등급으로 방치하는 것은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임시정부의 수반을 맡았던 김구 선생과 이승만 대통령의 서훈이 1등급(대한민국장)인 것과 비교하면 국가 보훈 체계의 모순이다.
현재의 '등급 불균형'은 5·16 군사정권의 속전속결에서 비롯됐다. 충분한 사료 검증과 역사적 가치 평가보다 기록 위주로 등급을 매긴 결과였다. 일제가 남긴 판결문이나 감옥에서 보낸 시간이 등급을 결정하는 잣대가 됐다. 만주에서 무장 투쟁을 이끌었던 독립운동가들의 경우 '옥고 기록'이 부족해 과소평가됐다. 전 재산을 던지고 독립운동에 나선 '희생의 깊이'를 헤아리지 못한 셈이다.
석주 선생의 독립운동과 관련된 '객관적 물증'도 대거 발굴됐다. 석주 선생이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낼 당시 중국 정부와 주고받은 외교 문서가 나왔고, '서간도 시종기',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 소리가 들린다' 등 당대 인물들의 증언과 기록이 '사료적 가치'로 인정받고 있다. 석주 선생의 임청각 매각 기록도 존재한다. 국가보훈부는 석주 선생의 사료를 입체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일본 경찰에 잡히지 않고 끝까지 싸운 게 훈격의 족쇄가 되는 역설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석주 선생에 대한 재심사는 단순한 등급 상향이 아니라, '보훈의 정의'를 세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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