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일 리안갤러리 대구를 방문한 애나 박이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지극히 미국적이며 상업적인 이미지의 조합에 현대 여성의 정체성과 MZ 세대의 거침없는 표현력을 투영한 전시가 대구에서 열려 눈길을 끈다.
리안갤러리 대구는 오는 6월28일까지 글로벌 아트씬에서 주목받는 대구 출신 재미(在美) 작가 애나 박(Anna Park)의 한국 최초 개인전 'Good Girl(굿 걸)'을 개최한다.
애나 박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게 된 계기는 2019년 현대 팝아트 거장 카우스(KAWS)가 SNS를 통해 그녀의 작품에 찬사를 보내면서부터다. 이후 애나 박은 2020년 데이빗 핀처(David Fincher) 감독의 '맹크, Mank' 포스터 제작에 참여했으며, 세계적 팝 가수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의 앨범 특별판 커버에도 자신의 작품을 올리며 이슈의 중심에 섰다.

애나 박 'Pick Me'<리안갤러리 대구 제공>
현재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을 펼치는 애나 박은 이번 전시를 통해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여성성'을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하고 지금껏 여성이 받아온 '사회적 억압'의 형태에 주목한다. 전시명 '굿 걸' 역시 아름다운 여성으로서의 삶을 암묵적으로 강요받는 세태를 다루고 있다. 1940년대부터 현재까지 미국의 광고와 만화 속 여성의 이미지 및 관련 텍스트를 조합해 작업한 14점의 목탄화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애나 박은 “광고가 반복해 전하려는 '여성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메시지에 주목했고, 거만한 여성들의 태도도 비꼬고 싶었다"고 말한다.
애나 박이 흑백 이미지에 집중한 이유는 목탄이 지닌 물성과 확장성의 매력 때문이다. 목탄 특유의 뭉개진 느낌과 속도감을 통해 아련한 옛 추억을 부각시키려 했다. 잘려나간 흑백 프레임 속 이미지들은 다른 이미지들을 보완하며 자유를 갈망하는 애나 박만의 서사를 만들어간다.

애나 박 'Temptress'<리안갤러리 대구 제공>

애나 박 'Like This'<리안갤러리 대구 제공>
자본주의의 총아인 실제 광고 속 여성의 이미지와 텍스트를 빌려와 분해하고 재조합했다. 여기에는 스마트폰으로 두서없이 소비되는 이미지에 대한 작가의 함의도 담고 있다. 화면 속 여성들은 하나같이 활기차고 즐거운 모습이지만, 그 기저에는 슬픔과 욕망이 자리해 있다. 작품 속 텍스트는 정보 전달과 미학적 역할을 담당하는데, 각 폰트(글꼴)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의 변화와 메시지에 집중한다. 작업 진행 방식은 즉흥적이다. 계획적 의도가 깔리면 작품이 추구하는 자유로움에 해가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철저히 미국적 이미지로 점철된 듯한 작품이지만 한국인으로서 정체성도 스며들어 있다. 유년시절 미국 유타주(州)에서 자라면서 정체성 혼란을 겪었지만, 드로잉을 통해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만들어 나갔다. 작품에 활용된 한지 특유의 질감 역시 여느 목탄화와 구별되는 한국인만의 미묘한 노스텔지어를 소환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애나 박은 “한국 첫 개인전을 고향인 대구에서 하게 돼 감회가 남다르다. 여성에 대해 특정 행동양식을 기대하는 사회현상에 대해 고찰한 이번 전시는 표면적으로는 나의 스토리이기도 하며 '굿 걸'이 지닌 양가적 의미도 포함하려 했다"고 말했다.
애나 박은 1996년 한국(대구) 출생으로 미국 뉴욕 예술 아카데미(New York Academy of Art)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뉴욕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활동 중이다.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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