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희의 그림 에세이] 정점식과 이중섭의 삶과 작품, 굴곡 많은 슬픈 가족사 예술로 승화하다

  • 김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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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6-13 07:55  |  발행일 2025-06-13
정점식, '모자', 캔버스에 유채, 76.5×51.0cm, 1957, 개인 소장

정점식, '모자', 캔버스에 유채, 76.5×51.0cm, 1957, 개인 소장

폴 세잔이 자신의 작품을 이해해줄 벗을 아쉬워했듯이 누군가의 한마디가 절실할 때가 있다. 불가(佛家)에서 제자가 스승에게 인가를 받는 것처럼 예술가도 그렇다. 우리 근대 미술사에도 두 예술가에게 인가를 해준 한 스승이 있다. 그 스승은 일본 문화학원의 교수로 알려진 쓰다 세이슈(律田正周⸱1907~1955)다. 그는 일본에서 이중섭(1916~1956)을, 하얼빈에서 정점식(1917~2009)에게 예술가의 길을 터주었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쓰다를 만난 이중섭과 정점식은 한국전쟁 때 대구에서 운명처럼 마주한다.


이중섭과 도쿄의 쓰다 세이슈

이중섭은 1916년 평안남도 평원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그는 오산학교 미술교사 임용련(任用璉⸱1902~?)의 눈에 들면서 화가의 길로 들어선다. 선생의 권유로 1937년 일본 도쿄문화학원에 입학한다. 그곳에서 쓰다를 만난다. 쓰다는 "이중섭이 하숙하는 이웃에 화실을 꾸며놓고 벨기에 출신 프랑스 여성 아리스와 함께 살아가는, 당시 군국주의 분위기를 거스르는 자유주의자"였다. 일본의 전위적 미술단체인 신시대양화전과 자유미술가협회의 창립회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쓰다는 우리나라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유명 인사였다. 유영국(1916~2002), 김병기(1916~2022), 이중섭 등이 일본에 유학할 때 그의 문하생이었을 만큼 우리 화가들과 유대가 깊었다.


쓰다의 영향을 받은 이중섭은 유학 중 후배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1921~2022, 한국명 이남덕)를 만나 결혼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평양에서 미술교사를 하며 단란한 생활을 하던 중 한국전쟁이 터진다. 부인과 두 아들을 데리고 월남하여 부산과 제주도 등지에서 피란생활을 한다. 가난은 가족을 지켜낼 수 없었다. 이중섭은 큰 결심을 한다. 1952년 7월경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의 처가로 보낸다. 홀로 남겨진 그는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다가 대구에 잠시 머문다. 그때 정점식을 만난다.


정점식과 하얼빈의 쓰다 세이슈

정점식은 1917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났다. 7세 때 대구 약전골목에서 고모부가 운영하던 한의원에서 한문과 서예를 배웠다. 1938년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시립회화전문학교에 입학한다. 1941년 졸업하고 만주 하얼빈으로 간다. 그때 태평양전쟁을 피해 쓰다도 하얼빈에 와 있었다.


1945년 8월15일,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고, 세상이 급변한다. 하얼빈에 진주한 소련군들이 일본인 남자들을 대대적으로 체포하기 시작한다. 그때, 한 지인이 쓰다를 정점식의 집으로 피신시킨다. 이때 정점식은 쓰다와 3개월간 함께 생활한다.


어느 날, 정점식의 스케치북을 몰래 보았던 쓰다가 "정점식은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보고 있다"며 추켜세웠다. 그림의 소재와 그것의 형상화에 나타난 독자적인 표현에 대한 칭찬이었다. "어쩌면 내 그림이 스페인적인 풍토나 문화적 배경 밑에서 나올 법한 것이라는 마치 예언자적인 기이한 말을 해주었다." 이국에서 고군분투해온 자신의 작업을 누군가가, 그것도 미술계의 유명인사가 알아봐준 것에 정점식은 용기를 얻는다. 쓰다는 정점식의 '삶을 바꾼 스승'이었다. 1946년 쓰다와 헤어진 정점식은 가족을 데리고 귀국한다.


이중섭의 대구 개인전과 가족

이중섭, '가족에 둘러싸여 그림을 그리는 화가', 은지에 새기고 유채, 10×15cm, 1950년대

이중섭, '가족에 둘러싸여 그림을 그리는 화가', 은지에 새기고 유채, 10×15cm, 1950년대

1955년 서울 미도파백화점 전시를 마치고 대구에 온 이중섭은 대구역 앞 경복여관 2층에 머물렀다. 그는 대구 전시(1955년 4월11~16일)를 앞두고 있었다. 정점식은 자신이 재직 중이던 계성중⸱고등학교에 작업실을 내주고 물감과 캔버스를 제공한다. 제자들은 미공보원에서 열린 이중섭의 개인전을 도왔고, 정점식은 '축사'를 썼다. 이중섭 사후에는 그와의 일화를 소개한 에세이 '중섭의 에로티시즘'(1976)을 발표하고, '이중섭미술상' 제정에 힘을 보탠다.


이중섭의 작품은 애절한 가족 이야기이다. 제주도에서 생활했던 가족들의 행복한 순간을 낙원같이 표현했다. 아이들과 바닷가에서 게를 잡고 뛰어노는 가족에게 둘러싸여 행복하게 그림을 그리는 자신을 그렸다. 대부분 두 아들과 아내, 자신을 소재로 한 작품이었다.


그는 캔버스를 살 돈이 없어서 담뱃갑 내부 포장지인 은지(銀紙)에 그림을 그렸다. '은지화'는 못으로 형상을 새긴 뒤, 그 위에 물감을 발라서 닦아낸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수많은 은지화 중 '가족에 둘러싸여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있다. 개구지게 노는 아이들이 중심이다. 아이가 게와 물고기를 잡거나 흙장난을 하며 모래 속으로 파고든다. 아내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다. 이 장면을 이중섭이 그림으로 표현한다.


이중섭, '길 떠나는 가족', 엽서, 1954

이중섭, '길 떠나는 가족', 엽서, 1954

'길 떠나는 가족'은 가족의 단란한 때를 표현한 엽서화다. 이중섭이 소 고삐를 쥐고 춤추며 앞장서 간다. 팔을 높이 들고 뒤돌아보는 몸에 흥이 올랐다. 꽃 장식을 한 황소는 당당하다. 꽃이 뿌려진 수레 위에는 큰 아들이 소꼬리를 잡고 즐거워한다. 아내는 흐뭇한 몸짓으로 정면을 바라본다. 작은 아들이 뒤따르는 새를 잡으려고 무릎을 굽혀 중심을 잡는다. 모두 행복한 표정이다. 이와 동일한 도상으로 그린 유화작품이 두 점 있다. '길 떠나는 가족'은 이중섭이 꿈에서라도 보고 싶은 가족을 담은 것이다. 끝끝내,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반추상의 '모자상'으로 승화된 개인사

정점식은 예술의 가치는 이미지가 풍부하고 화려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오히려 그 시대와 밀착되어서 빚어내는 빛이며, 얼룩이며, 진지한 숨결에 비중이 주어지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암울했던 시절, 그는 하얼빈의 이국적인 건물을 스케치하고, '고향이 없는 노스탤지어의 거리'를 떠도는 이방인들을 그렸다. 하얼빈에서의 급변하는 현실에 맞서 자신의 복잡한 심정을 담은 작품들이 남아 있다.


그에게도 고통이 뒤따랐다. 어린 큰딸을 하얼빈에서 질병으로 잃는다. 광복이 된 후, 1946년 5월 북한을 통해 귀국하는 길에 첫째 아들마저 유행병으로 잃게 된다. 두 명의 자식을 가슴에 묻은 그는 아이들을 그리워하는 이중섭의 심정을 이해하지 않았을까. 그래서였을까. 그의 작품에는 모자상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조형적인 형식이 강세를 보인다. 형식의 새로움 탓에, 모자상에는 일체의 감정적인 표현이 배제되어 있다. 그럼에도 근저에는 아픈 개인사가 도사리고 있지 않을까.


'모자'(1957)는 엄마가 아기를 두 손으로 안아서 웃으며 아기를 바라보는 작품이다. 화폭의 가장자리에 밀착되게 사각의 그리드를 설정하여 그림의 기본 틀을 잡고, 그 속에 사각의 면과 곡선의 인물을 그렸다. 제목을 보지 않고 그림만 보면 추상이되, 형상이 감지되는 반추상이다. 붉은 계열의 색채로 구성된 어머니는 한쪽 가슴을 드러내놓고 얼굴을 한껏 뒤로 젖히고 있다. 아이는 엄마의 품에 안겨 행복해하는 시선이다. 곡선으로 조형된 부드럽고 밝은 톤이 어머니의 숨결처럼 따스하다. 자식에 대한 애정은 끝이 없다.


정점식, '즉흥', 캔버스에 유채, 116.8×91.0cm, 1986, 헌법재판소 소장

정점식, '즉흥', 캔버스에 유채, 116.8×91.0cm, 1986, 헌법재판소 소장

정점식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추상 작업에 생을 걸었다. 때로는 형상을 암시하던 작품을 완전히 해체하여 면과 선, 색채로 추상화시켰다. 1986년에 그린 '즉흥'은 가시적인 형상보다 면과 큰 붓질의 획이 화면을 경영한다. 연노랑 바탕에 회색의 면을 공간에 배치하였다. 주황색의 면이 즉흥적으로 흩뿌려지듯 변화를 주었다. 아래쪽의 회색 면에는 누드의 형상이 속필로 간결하게 그려져 있다.


정점식, '공간', 캔버스에 유채, 77×108cm, 2003

정점식, '공간', 캔버스에 유채, 77×108cm, 2003

말년에 접어들면서는 사물에 접근해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공간'(2003)이다. 갈색 바탕에 색을 덧바른 후 거친 붓 자국을 남겼다. 그 위에 기하학적인 형상을 가미하되, 바탕색보다 짙은 색과 연한 색으로 공간에 변화를 주었다. 감상자가 색채와 면을 통해서 깊이 사유할 수 있게 유도한다.


그의 예술혼을 기리는 유월

이중섭과 정점식은 각자의 예술에서 최선을 다했다. 둘 다 쓰다의 조언을 체화한 채 예술가의 길을 걸었다. 암울한 시대를 겪으며 이중섭은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지만 가족에게 보낸 엽서화가 사진첩이 되어 그를 들여다보게 한다. 정점식은 대구를 거점으로 추상화에 매진한 거장답게 개성적인 작품세계로 빛이 되었다. 매년 6월에 발표·시상하는 '정점식미술이론상'이 올해로 네 번째를 맞이한다. 다시 한 번 그의 예술혼을 기리는 유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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