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알카라스, 안세영의 역전승

  • 이효설
  • |
  • 입력 2025-06-19 18:04  |  발행일 2025-06-19

스포츠경기의 묘미 '역전승'

프랑스오픈 정상 알카라스

'세계랭킹 1위' 안세영의

"자신을 믿고, 한점씩…"

우리의 인생도 다르지않아

이효설 체육팀장

이효설 체육팀장

나는 축구경기를 직관하며 가끔 눈물을 흘린다. 취재를 위해 종종 대구iM뱅크파크에 들리지만, 경기 전부터 들려오는 관중들의 함성소리에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는 데 실패, 이내 콧날이 시큰해질 때가 몇 번 있었다. 경기가 시작되면 내가 응원하는 대구FC의 세징야가 골을 넣을 때는 물론, 환희의 세리머니, 넘어진 상대팀 선수를 일으켜주는 동료애의 순간에도 어김없이 울컥한다. 지나치게 감성적인 관전법이라 타박해도 뭐 어떠랴? 경기의 승부에만 집착하는 스포츠는 빙산의 일각만 보는 것이다.


최근엔 테니스경기를 시청하며 역전승의 감동을 제대로 경험했다. 먼저, 롤랑가로스에서 열린 프랑스오픈 세계 1위 야닉 시너와 카를로스 알카라스의 결승전. 5시간29분의 장대한 접전 끝 울려 퍼진 승전고는 세계 테니스팬들의 가슴을 울렸다. 알카라스는 놀랍게도 처음 2세트를 잃은 후 4세트에서 3개의 매치포인트를 구해냈다. 대단한 정신력이었다.


한 테니스전문지 기자가 물었다. 시너에게 지고 있을 때, 역전할 수 있다고 믿었냐고. 알카라스의 대답을 요약하면, 상대가 마지막 점수를 획득할 때까지 경기는 끝난 게 아니라는 것, 지고 있을 때도 자신을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 그저 한 번에 한 점씩만 생각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계속 자신을 믿었다고 했다.


인도네시아오픈 여자 단식에서 우승한 안세영 선수도 역전승의 정신력을 제대로 보여줬다. 9대 17에서 21대 19. 패배 직전까지 몰렸다가 승리로 끝낸 역전 스토리가 화제가 됐다. 결승전 당시, 안세영은 공격에서 자꾸 라인을 벗어나며 무너졌고, 수비하려고 몸을 던지다 다리에 피까지 났다. 누가봐도 포기할 수 있는 상황. 그때 뒤에서 "너를 믿고 최선을 다해. 포기하지만 마라"는 코치의 응원이 들렸다. 이후 안세영은 차분하면서도 공격적으로 경기 템포를 끌어올렸다.


국가대표 출신 조경수 iM뱅크 정구팀 감독은 "안세영은 1세트 승률이 낮고 역전승 비율이 매우 높다"면서 "지는 경기를 차근차근 한 점씩 끌어올려 경기를 완전히 지배한다"고 평했다. 지고 있을 때, 포기하고 싶은 생각을 뒤로 하고 계속 싸우려고 노력한 것이 배드민턴 세계랭킹 1위에 오르게 한 비결이었다.


데뷔 9년차에 최고의 성적을 내고 있는 삼성 라이온즈의 김성윤을 보면서도 '역전승의 미학'을 새삼 떠올린다. KBO리그 모든 타자중 타율 2위, 출루율 3위로 삼성 타선에서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됐다. 그런 김성윤도 2017년 데뷔 당시엔 163cm의 작은 체구로 시선을 끌었을 뿐 부상에 쓰러질 때가 많았다.


김성윤은 발전하기 위해 좋은 체격 만들기에 돌입했다. 입대 후 웨이트 트레이닝에 집중했고, 근육질로 변신한 후 웨이트 3대 운동 520kg을 번쩍 들었다. 체격과 신체능력이 좋아지면서 잠재력이 향상됐고, 올시즌 드디어 그 결실을 보기 시작했다. 신장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보도가 적잖지만, 그보다 성실하게 차근차근 노력해 과거의 자신을 뛰어넘는 '역전'을 했다는 게 더 의미 깊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천보성 전 LG트윈스 감독은 "역전패는 있어서는 안되고, 역전승은 귀하다. 프로의 세계, 그중에서도 진검승부를 하는 일류들의 영역에서 역전패, 역전승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만큼 역전승이 이루기 어렵다는 뜻으로 들렸다.


무더위가 시작됐다. 쳇바퀴 돌듯 이어지는 우리의 일상도, 당초 목표한 저마다의 계획도, 습한 날씨 탓에 조금씩 눅눅해져 원래의 모습을 잃어갈까 걱정이다. 그럴때마다 알카라스, 안세영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자신을 믿고, 한점씩 한점씩 끌어올리는 지혜를 발휘해본다면 어떨까.이효설<체육팀장>



기자 이미지

이효설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