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대구 서구 새방골] 대구 최초 성당 지나 상리봉 오르면 달구벌이 한눈에…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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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6-26 18:42  |  발행일 2025-06-26
1888년부터 시작된 새방골 성당. 계산성당의 전신이며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처음에는 초가집이었다고 한다.

1888년부터 시작된 새방골 성당. 계산성당의 전신이며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처음에는 초가집이었다고 한다.

붉은 타일로 마감한 저 건물은 과거 온천이었던가. '약' '명당'이라는 꼭대기 사인과 함께 오래된 온천기호의 일부가 보인다. 긴 양철 굴뚝에 연기는 없고, 속이 보이지 않는 유리문 위에는 식품회사 간판이 걸려 있다. 골목에는 유통, 테크, 기기, 공업사, 냉동, 상사, 엔지니어, 축산, 건설, 개발, 무역, 산업, 전기, 식품, 석유, 교통 등의 간판이 소소히 걸려 있다. 도로에 면해 요양원과 편의점이 있고 식당 몇 개가 가늠된다. 그들 사이에 3·4층의 빌라와 주택들, 작은 놀이터, 교회, 미용실 등이 어우러져 있다. 모두가 작정하면 소국하나 뚝딱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다양한 직종과 생활군의 연합이다. 미용실 입구 테라스는 다육이 전시판매장이다. 가지런히 정렬된 화분들을 슬쩍 넘겨보다 어둑한 내부에서 반짝 빛나는 세 사람의 눈빛과 차례로 마주친다. 꿈쩍 놀라 슥 지나치는 담벼락에서 하얀 예수님 상을 마주한다. 한적하고도 신묘한 동네다, 새방골은.


5월의 보랏빛 등나무 꽃으로 유명한 쉼터. 새방골 성당의 고풍스럽고 예쁜 트랜셉트 문 옆으로 황새바위와 김보록 신부의 흉상, 순례자 인증 도장함이 나란하다.

5월의 보랏빛 등나무 꽃으로 유명한 쉼터. 새방골 성당의 고풍스럽고 예쁜 트랜셉트 문 옆으로 황새바위와 김보록 신부의 흉상, 순례자 인증 도장함이 나란하다.

새방골 성당 내부. 스테인드글라스가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근래 한옥의 서까래와 고딕 성당의 볼트를 연상시키는 천장 장식 등을 더한 듯하다.

새방골 성당 내부. 스테인드글라스가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근래 한옥의 서까래와 고딕 성당의 볼트를 연상시키는 천장 장식 등을 더한 듯하다.

◆ 대구지역 최초의 신앙공동체, 새방골 성당


새방골은 서구 상리동의 자연마을로 상리1동이다. 와룡산의 동남 기슭 사면에 자리한 작은 마을인데 마을 앞으로 중부내륙고속도로지선이 놓여 있어 연결과 단절이 동시에 느껴지는 동네다. 조선 중기에 갑자기 돌풍이 불어 집이 날아와 이곳에 떨어졌고, 달성군 금호강 하류에 살던 함안조씨가 들어와 개척했다는 전설이 있다. 이후 임진왜란 때 진주강씨, 옥산전씨, 경주이씨 등이 모여들어 마을이 형성되었고 '새롭게 방이 생겼다'고 하여 '새방골'이라 했다 한다. 새방골에 가톨릭 신자가 들어온 것은 1860년 경신박해 때로, 한티와 동명에 살던 신자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교우촌을 형성했다고 한다. 1882년부터 조선은 서양 여러 나라들과 차례로 수호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프랑스와 수호조약을 맺은 때는 1886년이다. 당시 프랑스는 통상보다도 선교 활동을 중시했는데 당시 프랑스 선교사들은 수호조약 체결 전에 이미 조선 땅에 들어와 있었다. 1882년부터 경상도 지방의 선교를 맡고 있던 이는 김보록(로베르) 신부다. 그는 1885년 경북 칠곡 신나무골에 대구 최초로 사제관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경상도 지역을 사목하다 1888년 새방골로 거처를 옮겼다.


예수님 뒤편 지주대 위에 '새방골성당' 간판이 걸려 있다. 간판에 자그맣게 적혀 있는 'Since 1888'은 김보록 신부가 새방골에 온 때다. 처음에는 초가집이었다고 한다. 김보록 신부는 이곳에 2년 정도 머물면서 대구읍내와 새로 생겨나고 있는 공소들을 순방하고 '한국천주교회사'를 한글로 번역하였으며 서상돈 등과 함께 현재의 계산성당인 대구 본당을 계획했다. 이후 그는 계산 주교좌성당의 초대 주임신부가 된다. 뜰의 가장 먼 자리, 작고 둥근 화단 위에 성모마리아 상이 꽃처럼 서 있다. 성모마리아의 하늘색 허리띠가 아주 잠깐 드러난 맑고 푸른 하늘색과 똑같아서 절로 즐거워진다. 그 오른쪽에 고딕식의 작고 예쁜 새방골 성당이 자리한다. 상상을 해 보면, 대청이 있는 네 칸 초가집이 아니었을까. 그 초석위에 신도석을 배치하고 왼편에 한 칸을 늘여 종탑이 있는 입구를, 오른편에 또 한 칸을 늘여 제단을 구성하지 않았을까. 대청이 있던 칸에는 트랜셉트를 달아내어 순례자입구를 만든 게 아닐까. 정결하고 예쁜 성당이다.


성당 앞뜰에 김보록 신부의 흉상이 있다. 좌측 아래에는 흙 한줌이 보관되어 있는 오석이 있는데, 2022년 12월 말 조환길 타대오 대주교가 김보록 신부의 고향인 프랑스 몽벨리아 교구에 방문했을 때 신부님의 후손들이 전해준 흙이라 한다. 흉상 왼쪽에는 형구돌인 황새바위가 전시되어 있다. 경주의 감영 부근에서 수습되어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것을 새방골 성당에 기증한 것이다. 우측에는 새방골 성당과 닮은 순례자 인증 도장함이 있다. 새방골 성당은 2019년 순례자 성당으로 지정되었다. 김보록 신부는 1922년 1월 2일 남산동 주교관에서 선종했고 하였고, 대구대교구 교구청 성직자 묘지에 묻혔다. 그의 유언은 "나는 조선에서 죽고 조선에 묻히고 싶노라!"였다. 제단으로 연결되는 돌출 공간(아마도 신부님 대기실)의 창 앞에 등나무 쉼터가 있다. 5월의 보랏빛 등나무 꽃으로 유명하다는데 이제 무성한 잎으로 그늘이 짙다.


용산재 맞은편에서 시작하는 등산로는 상리봉까지 최단거리다. 초반의 짧은 완경사 이후로 줄곧 가파른 계단이 이어진다.

용산재 맞은편에서 시작하는 등산로는 상리봉까지 최단거리다. 초반의 짧은 완경사 이후로 줄곧 가파른 계단이 이어진다.

◆ 와룡산 상리봉 가는 길


성당 뒷골목을 돌아 달서재(達西齋) 채선수(蔡先修)의 재실이라는 용산재(龍山齋)를 담 너머 들여다보고, 조각보 같은 텃밭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와룡산을 오른다. 와룡산은 해발 300미터가 조금 안 되는 높이에 달성군, 달서구, 서구에 걸쳐 있어 등산로가 엄청 많다. 새방골에는 3개의 출발지점이 있다. 새방골 성당 앞 도로를 따라 끝까지 오르면 '와룡산산림휴양단지 제1주차장'이 있는데 이곳이 아마 상리봉으로 향하는 공식 등산로 입구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애용한다는 곳은 새방골 동쪽의 계성고등학교에서 출발하는 길이다. 그리고 또 하나가 용산재 맞은편 오솔길로 상리봉까지 급경사를 치고 오르는 최단길이다. 등산로라는 표지는 없지만 조금만 오르면 이정표를 만나게 된다.


멀찍이 산불감시초소가 보이는 너른 양지에 단장된 묘소가 있다. 재실이 있으니 묘소가 있지 않을까 했는데 맞았다. 달서재 선생의 묘다. 봉분은 둘레석으로 감싸고 묘비는 귀부위에 서 있다. 상석, 향로석, 한 쌍의 망주석도 갖췄다. 달서재 선생은 임진왜란 때 '팔공산의진'에 나아가 왜적을 토벌하고 정유재란 때는 곽재우 휘하에 들어가 화왕산성을 지키며 여러 번 전공을 세운 인물이다. 선생은 전쟁 후 고향으로 돌아와 공부하다가 인조 12년인 1634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묘소가 단정하다. 후손들이 자주 돌보는 모양이다. 묘소를 지나 또 작은 텃밭들을 지나면 줄곧 가파른 계단이다. 신속하고도 신중하게 더듬어 올라가며 생각한다. 비온 뒤의 숲은 정말 좋은 향기가 난다고. 허리춤의 숲속에서는 도무지 셀 수 없는 온갖 새들이 울고 먼 창공에서는 까마귀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친다. 너무너무 하얗고 작은 거미가 천천히 계단을 오르고 있다. 가느다란 다리가 얼음여왕의 속눈썹 같았다.


매년 1월 1일 서구청 주관의 해맞이 행사가 열리는 상리봉 전망대. 해발 255m다.  동남쪽으로 대구 도심과 앞산, 대구83타워 등이 조망된다.

매년 1월 1일 서구청 주관의 해맞이 행사가 열리는 상리봉 전망대. 해발 255m다. 동남쪽으로 대구 도심과 앞산, 대구83타워 등이 조망된다.

상리봉에서 북동방향을 보면 멀리 팔공산 비로봉과 능선, 환성산과 낙타봉, 초례산이 보이고, 금호강과 하중도, 제2팔달교, 서대구역사, 이현공단과 시가지가 펼쳐진다.

상리봉에서 북동방향을 보면 멀리 팔공산 비로봉과 능선, 환성산과 낙타봉, 초례산이 보이고, 금호강과 하중도, 제2팔달교, 서대구역사, 이현공단과 시가지가 펼쳐진다.

상리봉 정상의 헬기장에는 금계국과 나비바늘꽃이 한창이다. 돌탑이 있는 회전문을 통과하면 능선을 따라 와룡산 정상으로 가거나 경원고등학교 방향으로 내려갈 수 있다.

상리봉 정상의 헬기장에는 금계국과 나비바늘꽃이 한창이다. 돌탑이 있는 회전문을 통과하면 능선을 따라 와룡산 정상으로 가거나 경원고등학교 방향으로 내려갈 수 있다.

과연 끝이 있을까 싶은 계단 위로 세상에 태어나 처음 보는 환한 빛 속에 전망대의 하부 구조물이 드러난다. 상리봉 전망대다. 매년 1월 1일 이곳에서 서구의 해맞이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대구 도심과 금호강은 물론, 멀리 앞산과 더욱 먼 팔공산까지 보인다. 사진을, 생각을, 상상을 압도하는 풍경이다. 두터운 구름 아래 유난히 밝은 저곳은 잠시 하늘이 열린 자리, 성모마리아의 허리끈 같은 하늘색이 드러난 자리일 것이다. "이 띠를 받아라." 교인이 아니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성모마리아가 승천하기 전 그렇게 말하고 사라졌다고 한다. 이에 사도들이 모두 마리아의 무덤으로 가보니 시신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감미로운 향기만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전망대 데크에 대자로 누워 하늘을 본다. 회색 구름은 두터운데 꽃향기 난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계성고등학교나 와룡산산림휴양단지 제1주차장 쪽 등산로를 이용하면 1천여 그루의 편백나무 숲을 만날 수 있다.

계성고등학교나 와룡산산림휴양단지 제1주차장 쪽 등산로를 이용하면 1천여 그루의 편백나무 숲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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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방향 30번 국도를 타고 가다 죽전네거리에서 우회전해 직진, 서대구공단네거리에서 좌회전해 직진, 새방지하차도 지나자마자 좌회전하면 오른쪽에 새방골성당 이정표가 있다. 요양원과 편의점 사이 도로를 조금 오르면 왼편에 새방골성당이 자리한다. 길 따라 약 90m 정도 올라가다 구세군대구사랑교회 방향으로 좌회전해 80m정도 가면 파란색 대문의 수창공업사가 있는데 그 바로 옆에 용산재가 자리한다. 공업사 대문 맞은편에 와룡산 상리봉 등산로 입구가 있다. 계성고등학교나 주차장 쪽 등산로를 이용하면 1천여 그루의 편백나무 숲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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