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강, 형산강] 2. 물길 따라 피어난 신라 불교 문화

  • 박관영·이은임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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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8-12 20:20  |  발행일 2025-08-12
경주 첫 사찰 흥륜사는 ‘신라의 미소’도 품었다
경주 IC에 들어서면 제일 처음 마주하는 '신라인의 미소' 얼굴무늬 수막새 조형물. 막새에 얼굴 형상을 새겨 지붕 위에 올렸던 이유는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려는 것으로 보인다.

경주 IC에 들어서면 제일 처음 마주하는 '신라인의 미소' 얼굴무늬 수막새 조형물. 막새에 얼굴 형상을 새겨 지붕 위에 올렸던 이유는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려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흥륜사 사적지에서 발굴된 얼굴무늬 수막새. 일제강점기에 출토돼 일본인이 보관하다 1972년 국립경주박물관에 기증했다.  <문화재청 제공>

현재의 흥륜사 사적지에서 발굴된 얼굴무늬 수막새. 일제강점기에 출토돼 일본인이 보관하다 1972년 국립경주박물관에 기증했다. <문화재청 제공>

원효대사 '스캔들' 전하는 월정교 등

남천 일대가 흡사 불교 노천박물관

고구려 아도가 신라에 지은 흥륜사

선덕여왕 때 지은 영묘사라는 의견

원래 경주공고 자리라는 추정 분분

"뮷즈라고 들어봤어? 뮤지엄+굿즈! 이건 바로 요즘 전 세계적으로 힙하다는 신라의 미소 소스볼(sauce bowl, 종지)이야."


소스볼에 발사믹식초를 부으니 음각으로 표시된 눈코입이 은은하게 두드러지면서 신라의 미소도 진하게 나타났다. 형산강을 따라가는 답사 여행에 앞서 경주에서 동양화 작업을 하고 있는 화가의 집에서 잠시 티타임을 하던 중이었다. 누가 경주 토박이 아니랄까봐 머그컵에도 우리 민화인 호작도(虎鵲圖)가 그려져 있고, 그 옆에는 석굴암을 모티브로 한 은은한 무드등도 분위기를 밝히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무슨 중늙은이 취향이냐고 했을 법하지만, 천만의 말씀! 이게 다 트렌드에 민감한 MZ세대들 틈에 끼어 박물관 오픈런을 해야 살 수 있는 품절대란템들이다.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케데헌(케이팝 데몬 헌터스) 열풍' 덕에 요즘 가장 인기 있는 '까치 호랑이 배지'는 입고 1시간 만에 품절돼 다음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거 알아? 세계가 열광하는 이 문화상품들의 원본은 죄다 경주에 있다는 거."


아니나 다를까, 기승전 '경주'로 통하는 경주 토박이의 '깔대기이론'은 K문화 열풍으로 날개를 달았다. 케데헌에 등장해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호랑이와 까치는 우리 전통민화에서 탄생한 캐릭터인데 이건 불교의 수호신 상징이 변형된 것이고, 경주는 불교를 국가 차원에서 공인한 곳으로, 불법(佛法)이 도시 구조에 스며든 거대한 불국토였다는 것.


이쯤되면 다들 눈치 챘겠지만 그 중심에는 불교 문화를 물길로 연결한 형산강이 있다. 그러니, 배지 못 샀다고 아쉬워 말고, 경주 형산강으로 가보자!


◆원효와 요석공주의 설화가 깃든 월정교


"요즘 도파민 넘쳐나는 연애 프로그램들, 그 원초적인 서사의 원형이 여기 있다고 보면 돼."


화가의 말에 우리는 또 지나치게 과장한다 싶었는데, 실제 내용을 보니 과연 그랬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스캔들의 내막은 이렇다.


남자의 이름은 원효대사. 그가 어느날 거리에서 "누가 자루 빠진 도끼를 빌려주랴, 내가 하늘을 받칠 기둥을 찍으리라"라며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태종무열왕(김춘추)이 이를 듣고 '이 스님께서 귀부인을 만나 어진 아들을 낳겠다고 말하는구나, 나라에 큰 현인이 있으면 더없는 복이 될 것이다'라며 그를 찾게 했다. 마침 '문천교'를 건너고 있던 원효는 왕명을 받은 궁의 사신과 만나자 일부러 물에 빠져 옷을 적시고, 옷을 말린다는 핑계로 요석궁을 찾아간다. 당시 궁 안에는 젊은 과부가 살고 있었다. 그 이름은 요석공주. 3일간 요석궁에 머문 원효는 그 길로 궁을 나섰고, 공주에게는 태기가 있더니 신라 십현(十賢)의 한 사람인 설총을 낳았다.


"너무 파격적인 러브 스토리인데? 그것도 스님과 과부가? 게다가 3일?"


2025년의 연애 프로그램에서도 찾기 힘든 '나쁜 X'라는 마지막 말은 애써 삼켰지만 속으로는 '스님이 그래도 되나? 해골물 일화로 유명한 법력 높은 그 원효대사 맞나?' 고개를 갸웃하던 순간이었다.


"대중들에게 소위 먹히는 이야기로 스토리텔링하면서 은유나 상징 같은 설화적 요소가 섞인 것으로 봐야겠지. 여기서 중요한 건 불교를 상징하는 원효와 왕실을 상징하는 요석공주가 만나 유학자인 설총을 낳았다는 사실이야. 설총이 유학자로 성장한 것은 신라 후기의 불교와 유교 병존 체제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길이 66.15m, 폭 13m, 높이 6m 규모로 4개의 교각 위에 지붕을 얹은 독특한 형태의 목조 교량 월정교.  조선시대에 유실된 것을 10여 년 간의 조사와 고증을 거쳐 2018년 복원했다.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경덕왕 19년(760)에 '궁의 남쪽 문천에 월정과 춘양이라는 두 다리를 놓았다'라고 전한다. 당시에는 문천으로 단절된 월성의 북쪽과 남쪽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길이 66.15m, 폭 13m, 높이 6m 규모로 4개의 교각 위에 지붕을 얹은 독특한 형태의 목조 교량 월정교. 조선시대에 유실된 것을 10여 년 간의 조사와 고증을 거쳐 2018년 복원했다.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경덕왕 19년(760)에 '궁의 남쪽 문천에 월정과 춘양이라는 두 다리를 놓았다'라고 전한다. 당시에는 문천으로 단절된 월성의 북쪽과 남쪽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렇게 월정교 앞에 다다랐다. 510억 원이라는 큰 예산을 들여 10여 년간의 조사와 고증을 거쳐 2018년 복원을 완료한 월정교는 지붕 덮인 다리인 '누교(樓橋)'이다. 햇빛은 가려주고 바람은 통하게 한 덕분인지,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입구에서부터 시원한 강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우리는 운명처럼, 사랑에 빠진 한 남자를 만났다.


◆물길이 만든 불국토의 순환 (feat. 삼국유사를 30번 넘게 읽은 남자)


"삼국유사에는 원효대사가 문천교를 건넜다고 나오잖아요. 그런데 관광지도를 보면 또 여기를 남천이라고 써놨고. 문천이랑 남천이랑 형산강이 다 같은 말인 거예요?"


질문은 함부로 해선 안 된다. 특히 지식도, 열정도 많은 사람 앞에서는. 월정교 초입에서 만난 윤재황 문화해설사는 형산강을 탐방하는 모임을 하고 있다고 하자, 형산강 이름이 탄생한 북쪽의 형산(兄山)에서 시작해, 북천과 서천 등 경주를 관통하는 각 지류의 명칭을 그야말로 청산유수처럼 훑어나갔다. 강의 흐름 속에는 또 흥미로운 역사와 설화들도 넘쳐나서, 월정교가 위치한 형산강의 남쪽까지 내려오자, 아뿔싸, 점심시간이 됐다. 이야기가 너무나 흥미진진하게 흘러서 중간에 끊을 수가 없었다.


월정교에는 해설사가 여럿 계셨는데 삼삼오오 모여 함께 점심을 드시러 가는 눈치였다. 드디어 이야기의 물줄기가 목적지인 남천에 당도했지만, 오후에도 해설을 하셔야 할텐데 우리 때문에 점심을 굶을 수는 없지 않은가. 아쉬움은 접어두고 인사를 건네려던 참이었다.


"경주 시내를 중심으로 남쪽에 있다 해서 남천이라 부르지만, 신라 당시에는 문천이라고 했어요. 이게 모기 문(蚊)자예요. 벌레 충(虫)자 옆에 글월 문(文)을 써서. 삼국유사에 보면요, 신라 최전성기에 이 서라벌에 17만 8천936호가 살았다고 그래요. 17만 8천936호. 가구수만 말하는 거예요. 한 가구에 최소 5~6명 정도 살지 않았겠냐고 추정한다면 100만이라는 거지. 당시 당나라의 수도 장안 인구가 100만이었다고 하니 그 정도 규모였던 거죠. 여튼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이 물을 사용하고 여기로 생활용수를 흘려보냈을 테니, 제 생각엔 모기가 많아서 모기 문자를 쓰지 않았을까…."


점심시간도 아랑곳없이 이어지는 설명을 어디서 끊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왕지사 남천까지 이르렀으니 식음을 전폐하더라도 형산강 전체를 아우르는 해설 투혼을 보여주시기로 작정하신 모양이다.


"이 남천은 토함산 서북계곡에서 발원해서 불국사와 반월성을 지나 남산 밑으로 흘러들어 형산강 수계와 합류하는데요…."


옛 경주에서는 토함산과 불국사 일대의 물길이 형산강의 '동쪽 생명수'로 여겨졌다고 한다. 형산강 중류 유역은 불국사에서 경주 왕경(월성과 황룡사)으로 이어지는 경로와 맞물려 있어, 그 옛날 불교 의례나 축제 때의 운송로 역할을 했을 가능성도 크다고 했다. 불교 관련 유적들이 대부분 형산강의 지류를 따라 분포해 있다는 건 불교가 강을 매개로 전파됐다는 역사적 흐름을 뚜렷하게 보여준다고 했다.


신라 최초의 사찰인 흥륜사였을 가능성이 높은 경주공고 부지. 국립경주박물관의 조사 결과 '흥' 자가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는 등 흥륜사로 추정되는 문화유적들이 많이 출토됐다. 화단에는 절집의 석재들이 곳곳에 보인다.

신라 최초의 사찰인 흥륜사였을 가능성이 높은 경주공고 부지. 국립경주박물관의 조사 결과 '흥' 자가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는 등 흥륜사로 추정되는 문화유적들이 많이 출토됐다. 화단에는 절집의 석재들이 곳곳에 보인다.

신라 최초의 사찰인 흥륜사였을 가능성이 높은 경주공고 부지. 국립경주박물관의 조사 결과 '흥' 자가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는 등 흥륜사로 추정되는 문화유적들이 많이 출토됐다. 화단에는 절집의 석재들이 곳곳에 보인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신라 최초의 사찰인 흥륜사였을 가능성이 높은 경주공고 부지. 국립경주박물관의 조사 결과 '흥' 자가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는 등 흥륜사로 추정되는 문화유적들이 많이 출토됐다. 화단에는 절집의 석재들이 곳곳에 보인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신라에서 강은 '법수(法水, 번뇌의 때를 깨끗하게 씻어주는 물)'라고 했어요. 형산강은 불국사의 법수를 머금고 왕경을 적신 뒤 바다로 나아가는 거죠. 불법이 산에서 시작해 사람 사는 도시로, 다시 세계로 흘러간다고 볼 수 있죠."


혹시 종교가 불교냐고 물어볼 뻔했다. 철저한 불심이 아니라면 이 애정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다리 위에서 신라 불교문화의 백미인 토함산과 남산의 문화유적들까지 망라하다 보니 길이 66m 목조다리 하나를 건너는 데 족히 1시간은 넘게 걸렸다. 하지만 이 시간도 형산강 천 년의 역사를 아우르기엔 부족한 시간이다.


"제가 은퇴하고 삼국유사를 30번도 넘게 읽었어요. 정말 재미있거든요. 이야기 따라서 답사를 다녀보면 이게 다 서로 연결돼 있어요. 특히 남천 일대는 강줄기 전체가 불교 노천박물관이나 다름 없거든요. 그래서, 이제 어느 사찰로 가신다고요?"


다음 행선지를 궁금해하는 호기심 어린 그 눈빛은, 분명 사랑에 빠진 눈빛이었다. 신라 천년의 불교문화와 사랑에 빠진 해설사 덕택에 우리는 형산강을 따라 불교가 처음 뿌리내린 상징적인 공간을 제대로 찾아갈 수 있었다.


현재 사적지로 지정된 곳에 1980년대에 새로 지어진 흥륜사. 흥륜사는 527년(법흥왕 14) 이차돈의 죽음을 계기로 법흥왕이 크게 짓기 시작한 신라 최초의 사찰이다. 이 일대에서 '영묘지사', '대령묘사조와' 등이 새겨진 기와 조각이 출토되면서 학계에서는 이곳을 선덕여왕 때 창건된 영묘사 터로 보기도 한다.

현재 사적지로 지정된 곳에 1980년대에 새로 지어진 흥륜사. 흥륜사는 527년(법흥왕 14) 이차돈의 죽음을 계기로 법흥왕이 크게 짓기 시작한 신라 최초의 사찰이다. 이 일대에서 '영묘지사', '대령묘사조와' 등이 새겨진 기와 조각이 출토되면서 학계에서는 이곳을 선덕여왕 때 창건된 영묘사 터로 보기도 한다.

◆신라 최초의 사찰 흥륜사와 신라인의 미소


경주 흥륜사(興輪寺)는 불교 전파를 위해 신라에 온 고구려 승려 아도(阿道)가 지은 신라 최초의 사찰이다. 신성한 7개의 절터 중에서도 첫 번째로 꼽히는 절터인 천경림(天鏡林)에 건립한 사찰로 전해지는데, 발굴조사와 연구가 진행되면서 흥륜사 터에 대한 새로운 의견이 나오고 있다.


현재의 흥륜사 옆 지금도 발굴이 진행 중인 대형 금당지. 흥륜사지의 비밀을 풀어낼 추가 발굴을 기다리고 있다.

현재의 흥륜사 옆 지금도 발굴이 진행 중인 대형 금당지. 흥륜사지의 비밀을 풀어낼 추가 발굴을 기다리고 있다.

"사찰의 본당, 그러니까 부처님을 모신 곳을 금당(金堂)이라 하는데 그게 여기였나 봐. 지금도 발굴을 계속하고 있네. 그러니까 여기에서 '영묘지사(靈廟之寺)'라고 새겨진 기와 조각이 출토되면서 사실 이곳은 선덕여왕 때 창건한 영묘사에 해당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는 거지."


월정교에서 만난 해설사는 신라시대의 흥륜사는 지금의 흥륜사에서 약 1㎞떨어져 있는 경주공업고등학교로 추정된다고 했다.


"어쨌거나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에서 경주의 상징이자 국보인 '얼굴무늬 수막새'가 출토됐다는 거잖아."


신라시대 흥륜사의 위치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있지만, 적어도 이것 하나는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신라 최초의 사찰인 흥륜사가 상징하는 것은 단순히 종교의 도입이 아니다. 그것은 물길을 통한 외부 문화의 유입, 새로운 사상의 정착, 그리고 신라 사회의 변화 그 자체였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흡사 신라인의 미소를 닮은 듯했다.


글=이은임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 - 경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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