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물 얼룩처럼 남은 여름

  • 김보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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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9-24 06:00  |  발행일 2025-09-23
김보라 작가

김보라 작가

이번 여름은 유난히 길다고 했다. 또 이번 가을은 유난히 비가 잦다고 했다. 매년 새로운 듯 익숙한 계절이 반복될 때마다 마주하는 느낌표는 곧 물음표가 된다. '똑같은 말을 작년에도 들었던 것 같은데?'


운이 좋게 사계절을 지닌 나라에서 태어났다. 결국 1년 12달 365일이 지나면 다시 돌아오는 계절은 사실상 똑같지만, 시간이 흐르면 똑같은 일도 새롭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사계절 루틴은 비슷하다. 누구나 그렇듯 봄에는 벚꽃놀이를 가고 여름에는 물놀이를 가고 가을에는 단풍놀이를 가고 겨울에는 크리스마스를 대기표 삼아 연말 분위기를 즐긴다. 하지만 올해 여름이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는 말 그대로 여름이라는 계절을 흠뻑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도시에서 맞이하는 여름은 조금 더 특별하다. '대프리카'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을 가진 여름 도시 대구, 아름다운 '영남 알프스'를 품은 산악 도시 울산, 그리고 '해운대와 광안리'를 매년 고민하게 만드는 바다 도시 부산까지. 산과 바다를 이어 온통 청록에 둘러싸인 도시들은 놀랍게도 바람 한 점 불지 않고, 그 안에 선 나는 여전히 덥다. 그러나 이처럼 매년 반복되는 찌는 듯한 여름이 특별해진 이유는 올해 처음으로 발견한 방수 책, 일명 '워터프루프 북' 덕분이었다.


수영을 하다가 지겨워지면 선베드에 누워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늘 털지 못한 물방울 하나가 책에 얼룩을 남기는 것이 싫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나와 같은 사람이 많았던 모양인지 민음사에서 물속에서도 읽을 수 있는 방수 책을 출간했다. 깨끗한 책에 물 얼룩이 남을 걱정 없이, 빳빳한 책이 물에 젖어 쪼글쪼글해질 걱정 없이 물놀이를 하면서도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올해 만난 세계 고전 명작 '여름' 덕분이다. 책의 제목부터 '여름'인 이 책은 놀랍게도 과거 로맨스 소설이다. 한 여자와 두 남자의 고전적인 러브스토리는 후견인, 약혼녀, 사랑의 도피 등 단어만으로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내용이 가득 담겨 있다. 진부한 남녀의 연애 이야기가 전부였지만 어쩐지 '여름'에 '여름'을 읽는다는 것만으로 나는 온전히 여름을 느낀 기분이 되었다.


처음으로 여름이 끝나가는 것이 아쉽다. 늘 여름은 가장 싫은 계절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지금은 성큼 다가온 가을을 밀어내고 있다. 1년 12개월 365일이 지나면 다시 돌아올 여름에게 올해 우리는 꽤 잘 지낸 것 같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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