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조용한 밤의 프렐류드

  • 강구인 비원뮤직홀 공연기획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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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0-21 06:00  |  발행일 2025-10-20
강구인 비원뮤직홀 공연기획 PD

강구인 비원뮤직홀 공연기획 PD

직장인들의 문화생활은 대개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 진행된다. 남들에겐 문화여가의 시간, 공연장에서는 본격적인 업무의 시간이다. 공연장에서 일하노라면 야근과 주말 출근은 밥 먹듯 이루어지는 게 일상이다. 전쟁과도 같은 공연을 끝내고 나면 어두운 밤 하늘의 별이 퇴근길을 비춰준다.


힘들었던 하루. 하지만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기엔 시간은 벌써 밤 10시다. 하루가 끝나간다는 신호다. 시원한 맥주 한 캔으로 고됐던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 할까? 아니다. 퇴근길을 비추고 있던 별이 자연스레 손을 잡아 밖으로 끄집어 낸다.


예술가들에게 밤과 새벽은 영감이 넘치는 시간이라고 한다. 공연 기획자인 필자에게도 밤은 낮보다 더 창의적인 생각이 들게끔 하는 멋진 시간이다. 남들이 하루를 마무리하는 고요한 밤, 필자는 어두워진 길을 차로 운전하며 하루의 피곤함을 창문 너머로 날린다. 혼자만의 자유를 가지는 밤이다.


이와 비슷하게 음악에도 자유롭고 독립적인 형태를 가지는 기법이 있다. 프렐류드. 전주곡(前奏曲)이라 불리는 이 용어는 어떤 음악의 제일 앞에 등장해 그것의 시작을 알리는 곡이다. 본 부분의 곡과는 달리 짧은 형태와 독립적인 모습으로 구성되어 음악의 맛을 돋우는 마치 에피타이저 같은 곡이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형식으로 인해 많은 작곡가들에게 애용되어 온 작곡 기법이며, 그 인기에 힘입어 오늘날에는 독립적이고 형식이 자유로운 작은 기악곡을 통칭하는 용어로 쓰인다.


자유로운 밤, 이 시간은 필자에게 후주곡이 아닌 전주곡의 시간이다. 퇴근길에 마주한 독립적인 시간이지만 하루의 끝이 아닌 다음 날의 시작을 위한 시간인 것이다. 즉 내일이라는 하루 전체의 본 곡에 영향을 받지 않으며, 내일보다는 앞서 나오는 시간, 그것이 바로 오늘의 밤. 내일의 프렐류드이다.


조용한 밤의 프렐류드를 보내고 있자면, 오늘 사건들에 대한 회상과 내일 해야할 일, 그리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생각들이 떠오른다. 혼자이기에 이 사색의 시간은 방해받지 않는다. 다양한 생각들로부터 해방될 즈음 집의 모습이 눈앞에 들어온다. 짧지만 혼자 보낸 이 시간으로 인해 내일은 훨씬 더 아름다운 음악이 흐를 것이다.


늦은 시간에 퇴근할 수밖에 없는 업종. 그러나 혼자만의 조용한 밤이 있는, 프렐류드라는 단어가 이처럼 잘 어울리는 시간을 갖는, 이 직업을 필자는 사랑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조용한 밤, 또는 고요한 새벽의 프렐류드 같은 시간이 존재하길 바라며, 오늘 전주곡의 끝에서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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