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정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여민동락(與民同樂), 다시 리더십을 묻다 – 드라마 <에스콰이어>
2025년, 한국 법정 드라마는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모습으로 시청자들 곁에 다가왔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소년심판' 등 글로벌 무대에서도 인정받은 작품들의 명성을 이어가는 가운데, JTBC의 '에스콰이어: 변호사를 꿈꾸는 변호사들'는 3%대 시청률로 시작했지만, 입소문을 타며 넷플릭스 1위까지 오르는 이례적 흥행을 기록했다. 올해 법정·로펌 드라마가 주목받는 이유는 '현장성'과 '인간 이야기'라는 두 축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tvN 드라마 '서초동'(2025)과 에스콰이어는 모두 현직 변호사가 각본을 맡았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과거 법정 드라마가 사건 중심, 냉철한 논리와 판결, 권력 다툼에 치중했다면, 이들 드라마는 인간적 갈등과 상처, 치유와 성장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판결과 논리보다 사건을 대하는 변호사들의 공감과 성찰, 관계 회복의 과정이 중심이 된다.
제목 에스콰이어(Esquire)는 영미권에서 변호사를 존칭하는 단어로, 드라마는 주인공들이 이 칭호에 걸맞은 변호사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작품의 중심에는 윤석훈(이진욱 분)과 강효민(정채연 분)이 있다. 윤석훈은 냉철한 실력과 전략으로 팀을 이끄는 송무팀장으로, 로펌 내 권력 구도 속에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한다. 강효민은 로스쿨 우등 졸업생이지만 입사 면접부터 지각으로 위기를 맞는 등 사회 경험은 부족하다. 그러나 정의감 넘치는 신입으로, 윤석훈과 함께 사건을 해결하며 성장해 간다. 그들이 속한 율림은 사건 수임과 소송을 담당하는 다양한 팀이 모인 대형 로펌이다. 내부 권력 다툼과 이해관계 충돌이 끊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 윤석훈은 뛰어난 실력으로 조직을 이끄는 한편, 인간적 연민과 감성적 공감을 지키려 노력한다.
특히 드라마의 긴장 요소는 고승철(김의성 분) 전 대표와 권나연(김여진 분) 대표 간의 갈등이다. 고승철은 율림 로펌의 창립 파트너로 정치적 세력을 구축하며, 권나연을 등기 대표로 복귀시켜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조직 내 권력을 재편하려 한다. 그는 권나연을 이용해 불필요한 변호사들을 정리하려 하지만, 권나연과 윤석훈은 냉철한 판단과 전략으로 이를 간파하고 역공에 나선다. 젊고 매력적인 변호사를 통해 심리적 압박을 가하려는 시도도 오히려 돌파하며 고승철의 부패와 비리를 폭로한다.
이 대립은 단순한 권력 싸움을 넘어 조직 내부의 부패와 개혁, 인간적 성장을 담는다. 고승철이 과거의 권력 남용을 상징한다면, 권나연과 윤석훈은 미래를 책임지는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리더다. 권나연은 극 중에서 "힘은 가질 수 있어도, 그 힘을 지키는 게 더 어렵다"라고 말하며, 권력의 무게와 리더로서 책임을 명확히 인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리더가 구성원을 통제하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길을 걷고 함께 성장하며 기쁨과 책임을 나누는 동반자가 될 때, 조직은 단순한 집단을 넘어 생기를 가진 지속가능한 공동체가 된다. 승리는 나눌 때 풍성해지고, 책임은 함께 질 때 신뢰로 이어진다.
윤석훈의 "변호사 시험만 통과하면 다 변호사입니까?"라는 질문은 단순한 법조인의 자격을 넘어 인간 됨됨이와 책임 의식을 묻는다. 권력과 실력만으로 조직은 운영될 수 없으며, 진정한 공동체는 서로의 인간적 약점을 품어내는 연대에서 비롯된다. 바로 이러한 정신이 맹자(孟子)의 '진심장(盡心章)'에 등장하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이다. '백성과 더불어 즐긴다'는 뜻의 여민동락은 리더가 구성원의 행복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공감의 철학이다. 오늘날 조직과 리더십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며, 진정한 리더의 핵심이다.
결국 에스콰이어가 보여주는 공동체와 리더십은 평화롭고 완벽한 이상이 아니다. 권력 투쟁과 이해 충돌이 점철된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해야 하는 삶의 태도이며, 함께 웃고 함께 짐을 나누는 인간적 연대의 과정이다. 진정한 공동체는 개개인의 고난과 갈등, 연약함을 품어내는 역량에서 비롯된다. 오늘날 우리가 꿈꾸는 더 나은 조직,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세상을 여민동락에서 찾아보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영상] 월정교 위 수놓은 한복의 향연··· 신라 왕복부터 AI 한복까지](https://www.yeongnam.com/mnt/file_m/202510/news-m.v1.20251031.6f8bf5a4fea9457483eb7a759d3496d2_P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