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옥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이집트 여행은 일정이 빡빡했다. 그날도 새벽부터 바지런을 떨었다. 룩소르를 거쳐 후르가다까지 둘러볼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룩소르에서는 왕들의 무덤과 신전을 보고, 후르가다에서는 홍해 연안의 바닷속을 들여다보는 일정이었다. 3시 모닝콜, 4시 출발. 눈곱만 겨우 떼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얼마나 갔을까. 버스 안의 불까지 모두 끄고 일제히 눈을 붙였는데 뒤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이드님. 휴게소는 얼마나 가야 하나요?" 돌아보니 우리 팀의 H였다.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1시간 넘게 가야 하는데, 급하세요?"
불이 켜지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커튼을 드르륵 열어젖혔다.
"해다!"
가도 가도 사막인데 해까지 솟아오르고 있었다. 건물도 없고 나무도 없고 언덕조차 없었다. 그렇더라도 1시간 넘게라니!
"네에."
H의 '네에'는 애매했다. 참기 어렵다는 얘기 같기도 하고 참아보겠다는 뜻으로도 들렸다. 문제는 잠을 깬 다른 사람들이었다. 습관상 아침에 눈을 뜨면 화장실부터 찾지 않는가. 시계를 보니 6시 반이었다. 뇨의가 버스 안에 빛의 속도로 퍼져나갔다.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챈 가이드가, "조금만 기다리세요. 가면서 좀 볼게요."
위로라도 하듯 음악을 틀었다. '마이 웨이'였다. 대단히 부적절한 선곡이었다. 화장실 가고 싶은 사람들 앞에 '마이 웨이'라니! 어쩌라고?
"이봐요, 가이드! 아무데서나 볼일부터 보고 갑시다!"
드디어 제일 뒷좌석에서 거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급하단 말이요, 급하다고!"
중간자리, 앞자리에서도 들썩거렸다. 버스가 섰고, 다투어 내렸다. 해가 솟은 천지는 망망 사막이었다. 30여 명이 정도껏 흩어졌다.
다시 차에 오르자 버스 안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순하고도 은밀한, 공범자의 분위기가 맴돌았다. 대명천지 사막에서 함께 오줌을 갈긴 덕분일 터였다. 언제 우리가 이런 호사를 누려본 적이 있었던가. 급하다던 남자가 가이드에게 다가와 달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음악 틀어 봐요. 아까 그 '마이 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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