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혁 대구시의사회 홍보이사 곽재혁 신경과 원장
지역 의료 격차는 더 이상 새삼스러운 문제가 아니다. 응급실 폐쇄, 사라지는 산부인과, 소아 환자가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현실은 이미 지역 의료의 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를 해결하겠다며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지역의사제'다. 지역에 필요한 의사를 별도로 선발해 배치하겠다는 구상이지만, 의료계를 들여다보면 이 제도는 문제의 핵심을 비껴간 미완의 처방에 가깝다.
의과대학에서 의과 학생들을 가르칠 때, 상당수의 의대생들이 졸업 후 수도권 취업을 고민했고, 지방에서 수련을 마쳐도 다시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HMM 본사의 부산 이전 논의가 노조 반대에 부딪힌 모습이나, 2000년대 구미의 대기업 공장들이 잇달아 수도권으로 이동했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 지역을 떠나는 현상은 특정 직종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반에 뿌리 깊은 지역 불균형 구조가 원인이며, 의사 역시 그 구조 속에서 움직인다.
지방 의료기관들이 겪는 어려움도 단순히 의사 부족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병원 직원 채용의 어려움, 출산·인구 감소로 인한 필수과 경영 악화, 산부인과·소아과·외과의 높은 업무 부담 등 복합적인 문제가 얽혀 있다.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의사를 늘려 배치하면 해결된다"는 접근은 의료 현장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다.
공중보건의 제도만 보아도 문제는 명확하다. 대부분의 공보의는 3년의 복무가 끝나면 지역을 떠난다. 지역이 싫어서가 아니라, 남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순환식 인력 공급'만 반복되면서 지역의 의료역량은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정책은 여전히 인력 배치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필수의료의 붕괴다. 지역의사를 양성하는 데에는 최소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지역 의사제가 필수의료의 공백을 훨씬 빠른 속도로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의대에 진학한 학생들은 "어차피 10년이 지나면 지역에 필요한 필수 전문의를 공급될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될 것이다. 미래에는 공급이 늘어 필수과의 경쟁력과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는 판단 아래, 젊은 의사들이 필수의료 분야를 더욱 기피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결국 지역의사제가 의도와는 달리, 당장의 필수의료 공백을 더 깊게 만들고, 장기적으로는 필수과 지원 자체를 위축시키는 역설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미 무리한 의대 정원 확대 정책 이후 필수의료과 전공의 충원율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는 방식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지역의사제가 실효성을 갖기 위해선 '의사를 늘리는 정책'에서 '의사가 머무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경제적 지원은 일부 조건일 뿐, 당직 부담을 나눌 인력 구조, 필수의료 국가 보상체계, 지방병원의 시설·장비 개선, 중증환자를 함께 책임지는 협력 네트워크 구축 등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인프라 없이 인력만 보내는 방식으로는 지역 의료를 회복할 수 없다.
의료계가 지역 의사제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핵심은 의사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도 의료가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지역 의사제는 이러한 기반 위에서 다시 설계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지금의 방식으로는 지역 의료 회복에 턱없이 부족하다.
의료는 결국 '사람'이 아니라 '환경'이 움직인다. 이 단순한 진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지역 의료 정상화의 첫걸음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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