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덕률의 세상읽기] 존 레논의 ‘이매진’을 다시 찾아 들으며

  • 홍덕률 전 대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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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2-09 06:00  |  발행일 2025-12-08
홍덕률 전 대구대 총장

홍덕률 전 대구대 총장

1980년 12월9일, 45년 전 오늘이었다. 끔찍한 소식이 태평양을 건너 전해져 왔다. 존 레논이 사망했다는 것이다. 뉴욕 현지 시각으로는 8일 밤 10시경, 자신의 집 뉴욕 맨해튼의 다코타 아파트 앞에서였다. 다섯 발의 총성이 울렸고 곧 숨을 거뒀다고 했다. 신군부의 쿠데타와 야만에 힘들었던 23살의 필자에겐 소중한 위안처마저 빼앗긴 것처럼 슬픈 뉴스였다.


# 존 레논과 12·3내란


2년 전 체코의 프라하를 여행할 때 '레논 벽'을 찾았다. 젊은이들이 레논을 추모하며 민주화 염원을 그려 넣었던 '자유와 평화의 캔버스'다. 카를교 건너 15세기 종교개혁가 얀 후스의 동상을 보는 것과 함께 필자의 오랜 소망목록 가운데 하나였다. 역시 유명 관광지답게 전 세계에서 찾아온 팬들로 가득했다. 그 앞에 섰을 때의 가슴 뭉클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공산정권 시절, 청년들의 목숨을 건 민주화 함성이 40여년의 시간을 거슬러 심장을 치는 듯했다.


다시 1년이 흘러 지난해 뉴욕을 방문했을 때였다. 그때도 지금처럼 지구촌은 잔인한 전쟁과 억울한 죽음들, 공포로 뒤덮여 있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대표적인 예일 뿐이었다. 남북한 갈등도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정치권은 늘 정쟁이었고 극우기독교 집회에서 터져 나오는 악다구니는 국민 마음을 심란하게 했다. 레논이 노래한 평화와 사랑에 목이 타던 때였다.


시간을 쪼개 센트럴파크 스트로베리필즈를 찾았다. 그가 총탄에 쓰러진 다코다 아파트 길 건너였고 그를 추모하는 공간이 소박하게 조성되어 있었다. 바닥에는 그의 대표곡인 '이매진(IMAGINE)'이 원형의 흑백 모자이크로 새겨져 있었고 그 위에는 누군가 바친 흰 꽃, 붉은 꽃이 놓여 있었다. 꽤 많은 팬들로 붐볐다. 거리의 가수들도 여럿 있었다. 마침 한 가수가 기타 치며 부르는 '이매진'이 고요히 흘렀다. 그앞 벤치에 앉았다. 레논이 꿈꿨던 '독선을 이기고 하나되는 평화의 세상'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소중한 위안이었고 다시 마음을 다잡은 시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12·3 내란이 터졌다. 국회와 선관위를 침탈한 총든 군인들, 국회 앞까지 진격한 장갑차, 국회 본청 앞에 내려앉은 무장 헬기에 온 국민이 심한 충격에 빠졌다. 청(소)년 시절 유신 폭거와 12·12쿠데타, 5·17내란과 광주학살을 겪었던 필자에게는 끔찍한 악몽의 재현이었다. 특히 요인 수거 및 살해 계획, 서부지방법원 폭동, 윤어게인 집회, 전쟁까지 일으키려 했다는 보도 등을 접하면서 일상과 평화는 철저히 파괴됐다. 마음 졸이며 밤잠을 설친 날이 부지기수였던 지난 1년이었다.


특히 수많은 이들이 목숨까지 바쳐 세워낸 민주주의가 어이없게 무너지는 광경을 목도하는 것은 큰 고통이었다. 극우기독교 세력이 예배당과 거리에서 내뱉는 신성모독과 극우의 언동을 바라보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각계의 지도층 인사들이 은밀하게 내란을 감싸는 모습을 보는 것, 사회의 진보를 외쳐야 할 청년 세대가 극우화 퇴행의 선봉에 서는 모습을 보는 것도 견디기 힘든 고문이었다. 앞으로 얼마나 긴 세월을 이 나라가 또 몸살을 앓아야 할지 착잡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포기할 수 없는 숙제 아니겠는가? 레논이 속삭이듯 불러주는 노랫말이 불편한 마음을 다독여 준다. '상상해 봐요. 국가도 소유도 없고 죽임도 죽음도 없는. 모든 사람이 모든 세상을 함께 나누는⋯. 당신은 나를 몽상가라 말할지 모르죠. 그러나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에요. 언젠가 당신도 우리와 함께 하길 바래요. 그러면 세계는 하나가 되어 살게 되겠죠.'


그렇다. 공동체의 복원, 자유를 노래하며 평화로 하나된 세상을 향한 꿈을 놓쳐선 안 된다.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탐욕과 광기와 증오의 카르텔을 깨고 모두가 평화롭게 공생하는 사회 만들기를 포기해서도 안 된다. 비관하기보다는 실천하는 몽상가가 낫다.


레논은 종교와 삶에 대해서도 한마디 한다. '상상해 봐요. 천국도 지옥도 없는. 탐욕도 배고픔도 없는, 종교도 없는⋯' 배타적 신앙이 초래할 수 있는 폭력과 분열을 우려해서였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종교적 겸손'을 요구한다. 진리를 독점하려는 오만을 버리라고. 다름을 인정하는 포용과 사랑과 평화야말로 종교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 가치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 곱씹어 고민해야 할 화두다.


# 다시 시작할 때, 우리의 꿈을 향해


어느덧 1년이다. 험한 난관과 고비들을 수없이 헤쳐왔지만 아직도 내란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윤석열은 사과와 반성 없이 부하에게 책임 떠넘기기와 극우 선동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에 호응이라도 하듯 윤어게인 세력은 지난 3일, '윤 대통령과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는 구호를 내걸고 '계몽절 집회'를 가졌다. 장동혁 대표 역시 '우리가 황교안이다'고 외쳤다. 크든 작든 내란에 가담한 것으로 보이는 이들이 지금도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의 주요 요직을 차지한 채 내란 극복을 막아서고 있다.


아무리 할 일이 많고 갈 길이 멀어도 내란 청산은 포기할 수 없는 제1 과제다. 그 위에서 '청산을 통한 치유와 헌법 정신에 기초한 사회통합'도 고민해야 할 때다. 책임자 처벌과 내란 청산을 넘어 사회경제적 양극화 해소와 한반도 평화 구축으로 불가역의 민주주의를 세워야 한다. 그와 함께 내란으로 상처받은 마음들을 치유하고 국민의 일상을 온전히 회복하는 일에도 세심하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무너진 생계 때문에도 이미 지쳐 있는 서민들이 극우 정치권의 선동에 휘둘리지 않도록 민주주의의 사회경제적 효능감도 보여주어야 한다.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과 정보 편식으로 극우의 오명을 쓰게 된 청년들이 민주 시민으로 다시 설 수 있도록 보듬고 이끌어야 한다.


45년 전 오늘 쓰러진 존 레논이 꿈꿨던 세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생각해 본다. 결국은 시민의 집단지성이고 평화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일 것이다. 그리고 긴 호흡으로 실천하는 자세일 것이다. 불의 앞에 포기하거나 굴종하지 않고 반칙과 타협하지 않는 기개일 것이다.


그런 다짐으로 2026년 새해를 준비하겠노라 다짐해 본다. 내란을 온전히 극복하고 정의와 평화의 새날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희망으로 2026년 새해를 함께 준비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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