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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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2-11 06:00  |  발행일 2025-12-10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작곡가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작곡가

지난 토요일, 국립극단의 대표적인 레퍼토리인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을 만나고 왔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작품은 전국 순회 중이었고, 이날은 마침 구미문화예술회관 무대에 오른 날이었다. 오랜 시간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아온 연극이기에 자연스레 기대감도 컸다.


작품의 내용은 이러하다. 중국 진나라 시대, 권력 다툼 속에서 조씨 가문이 몰살당하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이가 은밀한 보호속에 자라 복수로써 가문의 원한을 풀어내는 이야기이다.


묵직한 역사적 배경과 2막에 걸친 긴 러닝타임이 공연을 보기 전에는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막이 오르는 순간 그런 우려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배우들은 매 장면마다 농도 짙은 에너지를 발산했고, 객석은 그 힘에 이끌리듯 울고 웃으며 극의 정서를 따라갔다. 특히 절제와 침묵이 교차하는 장면의 긴장감은 공연 후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서며 눈가를 훔치게 할 만큼 깊은 여운을 남겼다.


음악하는 사람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연극의 음악은 특히 까다로운 작업이다. 뮤지컬은 음악이 주도하는 장르라면, 연극은 그 반대다. 텍스트와 배우의 연기가 우선이기에 음악은 그 사이를 해치지 않으면서 숨처럼 스며들어야 한다. 이 작품의 음악은 바로 그 어려운 균형을 이뤄냈다. 불필요한 장식을 배제하고, 극의 맥을 따라가며 필요한 순간에만 긴장과 호흡을 받쳐주었다. 절제된 음향은 침묵을 더 또렷하게 만들었고, 그 침묵은 다시 감정을 밀어 올렸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작품이 낡지 않은 이유는 분명하다. 무거운 서사를 유희로 풀어내는 독특한 연출, 해학과 비극의 탄탄한 조화, 배우들의 압도적 연기력과 숙성된 앙상블, 간결한 무대미술, 여백의 미학, 마지막에 폭발하는 감정의 카타르시스 등이 모두 맞물려 있다. 음악·음향의 절제 역시 관객의 몰입을 더욱 강화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이 말해주는 것은 무대 위에서 흐르는 '시간의 밀도'였다. 장면을 끌고 가는 것은 화려한 무대세트나 과장된 감정이 아니라 배우들이 함께 쌓아온 10년의 공기와 호흡이었던 것이다. 연기 사이에 스며있는 묵직한 정서와 순간적인 유머가 관객의 감정을 교차시키며 비극적 서사를 과장하지 않고 오히려 한 겹 벗겨냈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단순히 오래 사랑받는 레퍼토리에 머물지 않고, 시간이 쌓일수록 더 깊어지는 공연예술의 본질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극장을 나서는 길까지 잔향이 남는 이유는 우리가 목격한 것이 단순한 비극의 재현이 아니라, 시간을 견디며 성숙해진 예술의 힘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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