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지영 지오뮤직 대표·작곡가
연말을 상징하는 단어를 하나 꼽는다면, 나이와 국적을 넘어 '크리스마스'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12월 초만 되어도 거리 곳곳에는 트리가 세워지고 산타클로스가 등장하며, 익숙한 캐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이 시기만큼은 하나의 분위기 속에 모두가 함께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크리스마스 캐롤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노래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오랜 변화를 거쳐왔다. '캐롤(carol)'의 어원은 라틴어 carula로, 본래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춤추고 노래하던 세속적인 민요였다. 즉, 캐롤은 처음부터 교회 음악만은 아니었다.
중세에 접어들며 12~13세기 무렵,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성경 이야기를 민중에게 쉽게 전하기 위해 노래를 활용하면서 성탄 캐롤은 점차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후 19세기 초 윌리엄 샌디스가 'Christmas Carols Ancient and Modern'(1833)을 출간하며 흩어져 있던 성탄 노래들을 정리했고, 이 시기를 기점으로 캐롤은 가족과 연말, 공동체를 상징하는 음악으로 자리 잡았다.
20세기에 들어서며 캐롤은 종교적 맥락을 넘어 라디오와 음반, 대중문화 속으로 확장되었고, 오늘날에는 종교와 민속, 대중음악이 어우러진 계절적 축제 음악으로 남아 있다.
서구 크리스마스 캐롤의 가사적 특징은 분명하다. 후렴구가 반복되고, 이야기보다는 선언이 많다. '기쁜 소식' '거룩한 밤'처럼 이미 정해진 사실을 함께 확인하고 선포하는 구조다. 시공간 역시 현재형에 머물며 지금 이 순간을 축복한다.
반면 한국의 크리스마스 음악은 다르다. 서구 캐롤이 '사건'을 노래한다면, 한국의 크리스마스 노래는 감정의 '상태'를 노래한다. 크리스마스인데 외롭고, 그립고, 쓸쓸하다는 고백이 자연스럽다. 화자는 '우리'보다 '나'에 가깝고, 합창보다는 혼잣말에 가깝다. 이는 크리스마스가 뿌리내린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서구에서 크리스마스는 오랜 전통이자 의식이지만, 한국에서는 선택하는 이벤트에 가깝다. 누구와 어떻게 보낼지 매년 다시 결정해야 하는 날인 셈이다.
그래서 한국의 크리스마스는 화려하면서도 쓸쓸하다. 빛과 장식은 넘치지만, 감정은 개인에게 맡겨진다. 어쩌면 한국의 크리스마스 캐롤이 쓸쓸한 이유는 실패해서가 아니라 솔직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연말은 한 해의 끝이자 마음의 결산서 같은 시간이다. 모두가 같은 노래를 듣고 같은 불빛 아래 서 있지만, 각자가 느끼는 온도는 다르다. 그 다름을 인정하고 노래로 남겨온 것, 그것이 한국식 크리스마스 음악의 방식이 아닐까.
올해의 마지막 칼럼을 마무리하며 꼭 즐겁지 않아도 괜찮은 크리스마스를 떠올려본다. 그 모든 감정이 허락되는 계절이라면, 그것 또한 충분히 크리스마스다운 풍경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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