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지 독립 큐레이터
10년 전, 나는 미국 시카고에서의 인턴십 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이었다. 다시 돌아간다는 것이 반가우면서도 막막했다. 어릴 때부터 미술과 옷이 좋아 패션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늘 사물의 표면보다 맥락을 더 궁금해했다. 마음속에 다시 미술사를 공부해야겠다는 선택지 하나를 남겨두고, 혼자 남미여행을 떠났다.
페루에 위치한 아구아스 깔리엔떼스부터 마추픽추로 향하는 고도 높은 산길을 숨 고르며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그토록 비현실적으로만 보이던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에 실제로 서 있기까지, 예측을 깨는 순간들과 악조건들을 마주할 때마다 나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돌아보면 내게 여행은 새로움을 찾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이미 채워져 있던 것들을 좀 더 비우는 과정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 비워낸 자리에는 곧 다른 질문이 들어섰다. 걷고 걸어도 힘든 줄 모르던 때처럼 이 길이 즐거운가.
그렇게 다시 미학미술사를 전공하고 지역 미술 현장에서 전시를 구상하며 글을 쓸 때, 종종 그때를 떠올린다. 전시 역시도 누군가에게는 가득 채우는 작업처럼 보이지만, 실은 비움의 연속이다. 작가의 모든 작품을 걸 수 없고, 모든 이야기를 담을 수 없다. 한정된 공간과 예산, 일정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 속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포기할지 과감히 결정해야만 한다. 전시는 그 과정에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선명해진다. 비워낸 만큼 자기 목소리를 갖는다.
미술관 안과 밖을 오가다 보면 전시란 늘 완성된 형태로 존재하는 듯 보이지만, 끊임없이 진행 중이다.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 불안정한 상태에서 전시는 스스로의 방향을 묻는다. 왜 이 전시여야 하는지, 지금 여기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말이다.
전시기획에서 비움의 감각은 더 중요해짐을 느낀다. 지역의 문화 예술은 늘 많은 기대와 역할을 동시에 떠안는다. 기록의 책임과 의무, 지역의 활성화, 적당한 새로움. 욕심을 내다보면 중요한 것은 흐려진다. 무엇을 비울 것인가를 결정할 때, 비로소 관객에게 닿는다. 좋은 전시는 미술관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 전시를 관람하고 난 뒤 떠오르는 질문들, 작품에 대한 기억, 말없이 지나치면서 느꼈던 여운까지 관람객들은 저마다의 경험을 미술관 밖 자신의 일상으로 데려간다.
지난해, 미술관 안과 밖에서 마주한 전시 곳곳은 고생스럽지만 선명히 남아있는 그날의 여행길처럼, 비움과 채움 사이를 오가며 존재하고 있었다. 새로운 한 해, 나는 또 무엇을 비우고 채울 수 있을까.
김은지 <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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