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다시 또 시작

  • 정병수 극단 창작플레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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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1-08 06:00  |  발행일 2026-01-07
정병수 극단 창작플레이 대표

정병수 극단 창작플레이 대표

2026년 새해가 밝았다. 누구나 새로운 뜻을 품고 과거보다 나아진 미래를 꿈꾼다. 달력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새것을 걸 때의 설렘은, 마치 막이 오르기 직전 암전된 객석에 흐르는 긴장감과 닮았다. 공연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나에게 '새로움'이나 '시작'은 꽤나 이중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희망인 동시에, 지난했던 창작의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밟아야 한다는 엄중한 현실의 예고이기 때문이다.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는 이런 말을 남겼다. "해보다. 실패하다. 상관없다. 다시 해보라. 다시 실패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Try again. Fail again. Fail better)."


이 문장만큼 공연계의 생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말이 또 있을까. 무대 위에서 완벽을 꿈꾸지만, 공연은 생물과 같아서 늘 변수와 마주한다. 작품이 끝나면 우리는 무대를 부순다. 조명을 떼고, 배우들의 땀 밴 의상을 정리하고, 세트를 철거해 트럭에 싣는다. 텅 빈 극장을 마주할 때면 허탈함이 밀려오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비움'이 있어야 다음 작품을 위한 '채움'이 가능하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예술은 '끊임없는 다시 시작함'에서 비롯되었다. 미켈란젤로는 80세가 넘어서도 "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다"고 했다. 천재라 불리던 그조차 매일 아침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망치를 들었을 것이다.


2026년의 시작점에서, 나는 다시 기획서를 쓴다. 지난해의 성과와 아쉬움은 이미 지나간 레퍼토리다. 이제는 새로운 시즌을 위한 캐스팅 보드를 짜고, 예산을 검토하고,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카피를 고민해야 할 때다. 나는 올해도 수많은 거절을 당할 것이고,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과정임을 이제는 안다.


새해라는 거창한 타이틀이 붙었지만, 사실 오늘은 어제와 이어진 하루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시점에 '시작'이라는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굳어버린 마음의 밭을 다시 갈아엎을 용기를 얻는다. 지난 날의 성적표는 잊자. 실수했던 결정도, 큐 사인이 엇갈렸던 아찔한 순간도 모두 과거다.


지금 우리 앞에는 2026년이라는 텅 빈 무대가 놓여 있다. 조명은 다시 켜졌고, 관객들은 숨죽여 기다리고 있다. 두려워 말고 큐 사인을 외치자. 설령 비틀거릴지라도, 우리는 어제보다 더 멋지게 걷는 법을 배우게 될 테니까. 예술도, 인생도, 멈추지 않는 한 모든 순간이 '다시 또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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