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이 껴있는 연말이 모두에게 항상 따뜻하고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사진은 크리스마스 장식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12월에는 참 많은 캐럴을 들었다. 외국 가수가 부른 캐럴, 한국 가수가 부른 캐럴, AI가 불러주는 캐럴 등. 신나는 박자의 캐럴만 있는 것도 아니다. 느리고 겸허해지는 듯한 성탄절 노래도 몇은 섞여서 가게나 길거리에서 퍼졌다.
카페에서 일할 적 바이올린 학원 수강생들이 카페를 대관한 적이 있었다. 카페에서 바이올린으로 캐럴 합주하는 걸 영상으로 담았다. 어느 정도 바이올린 경력이 있던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연주임에도 실수가 많았다. 누구는 박자가 빠르고 누구는 느리고 누구는 뭐랄까 차분해도 너무 차분했다. 몇 번 멈춤이 있은 후 학원장이 말했다. 캐럴 합주가 참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는 캐럴이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누구는 빠르고 경쾌한 것이 캐럴이라고 떠올리는 반면 누구는 덤덤하고 차분한 것이 캐럴이라서. 캐럴 합주가 힘든 이유를 듣고 나서 문득 각자 마음속에 있는 캐럴이 다르다는 것이 조금은 슬펐다. 이유 없이.
오 헨리의 소설 '크리스마스 선물'. <크리에이티브탱크 제공>
오 헨리의 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은 대중에게 익숙한 짧은 소설일 것이다. 아내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머리핀을 사주기 위해 시계를 파는 남편, 시곗줄을 사기 위해 긴 머리카락을 잘라 파는 아내의 이야기. 서로를 위해 자신이 가진 소중한 걸 희생했지만 씁쓸한 일만 생기고 말았다. (좋은 일만 가득해야 하는 성탄절에 이런 아이러니라니.)
성탄절이 껴있는 연말이 모두에게 항상 따뜻하고 아름다운 것은 아니리라. 더 우울해지는 사람도 있다. 솔로라서, 내년이 걱정되어 또는 올해에 이루고자 했던 것들을 이루지 못해서일지도 모른다. 몇 개의 짧은 우울이 나를 성숙하게 만들고 1년을 돌아보게도 하고, 1살을 더 먹게도 만드는 것 같다.
시 '장편(掌篇)'이 담긴 김종삼 전집. <나남 제공>
이 시기가 되면 다시 읽는 시 1편이 있다. 김종삼의 '장편(掌篇)'이라는 시다.
"작년 1월 7일/ 나는 형 종문이가 위독하다는 전달을 받았다/ 추운 새벽이었다/ 골목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허술한 차림의 사람이 다가왔다/ 한미병원을 찾는다고 했다/ 그 병원에서 두 딸아이가 죽었다고 했다/ 부여에서 왔다고 한다/ 연탄가스 중독이라고 한다/ 나이는 스물 둘, 열아홉/ 함께 가며 주고받은 몇 마디였다/ 시체실 불이 켜져 있었다/ 관리실에서 성명들을 확인하였다/ 어서 들어가 보라고 한즉/ 조금 있다가 본다고 하였다"
시 창작 수업 중 보았던 이 시가 계속 마음에 남는다. 이 시를 알게 된 건 10년이 넘었고 연말이나 연초에 이 시를 끄집어서 읽는다. 연탄을 때본 적도 없는 나에게 낯선 시지만, 왜일까 추워지면 이 시가 떠오른다. 마지막 2행을 통해 문자로 만드는 슬픔이 얼마나 클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학생들과 문예 창작 수업할 때 이 시를 제일 먼저 읽게 한다. 시를 읽고서 이미지를 만들어 보라고 한다. 아빠 이미지를 떠올려 보라고. 대입하기 쉽게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배우의 이미지를 가지고 와서 설명하고는 한다. 어찌 움직이지 못하고 가만히 있다가. 떨고 있을 어떤 사내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라고. 처음으로 시를 읽는 문청들에게 가혹한 시련 같은 것일 수도 있겠으나 텍스트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설명할 때 이 시를 같이 읽는다. 이미지는 많은 감정을 대신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종종 누군가의 아픈 사연을 들을 때가 있다. 위로를 건네야만 하는데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참혹한 일이 그에게 있었다.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을 때 나는 눈빛이라도 건넨다. 그것 말고는 해줄 것이 없어서. 시에는 눈빛이 없지만 여백이 있다.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서 생기는 그 여백을 사랑한다. 어떤 물질로도 대체될 수 없는 순간을 느끼게 한다. 누구든 그 순간을 겪기를 바란다. 슬픔을 공유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있을 위로를 같이 겪고자 함이다.
눈이 내린 도심 도로에 차량들이 늘어서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봄이 1월부터 왔으면 좋겠다. 12월까지만 춥고 새해 시작은 따뜻함과 함께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렇지 못한다. 이번 겨울에도 누군가는 추웠을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루고자 했던 것과 점점 멀어지고 있을 수도 있고 캐럴이 어둡게 당신을 잠기게 만들었을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 모든 이들을. 당신을 존경한다.
꽃말이나 별자리 이야기의 근원을 찾아보려고 한다. 가장 그럴듯한 이야기, 가장 낭만적인 이야기, 가장 교훈이 될 법한 이야기들이 살아남아서 지금까지 전해 내려온 것이겠지. 네잎클로버가 왜 행운을 상징하는지, 수선화의 꽃말은 왜 자기애인지 그와 관련된 전설을 찾아보면 재미있다. 그러다가 다른 이야기들은 어찌 되었을까. 괜한 걱정을 하게 된다. 아름답지 못하거나 어설퍼서 꽃말이 되지 못하고 신화가 되지 못한 채 사라진 다른 이야기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그런 이야기들이 모여 있는 곳이 있다면 거기는 어떤 곳일까. 이야기가 되지 못한 이야기가 있어서. 그런 것들이 나를 쓰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바이올린 합주를 했던 캐럴이 어떤 곡이었는지 이제는 생각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금은 사람마다 떠올리는 캐럴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니 나는 문득 내가 쓴 글들에게,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들에게, 내가 알게 될 이야기들에게, 그리고 당신들에게도. 모두 잘해주고 싶다. 이유 없이.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