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기획]“의사 선생님, 챗GPT는 그렇게 진단 안하던데요”…AI가 바꾼 의료 풍경

  • 강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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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1-18 18:02  |  발행일 2026-01-18
진료전 AI 통해 병명 추정하고 치료 방향까지 확인…의사와 충돌 잇따라
의사들 “증상·소견 설명 보다, AI가 왜 틀렸는지 해명 하는 경우 많아져” 한숨
대구의 한 병·의원 진료실에서 환자가 스마트폰을 들고 의료진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최근 인공지능(AI)을 통해 증상과 치료 정보를 미리 확인한 뒤 병원을 찾는 사례가 늘면서, 진료 현장에서는 환자와 의사 간 판단을 둘러싼 갈등이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이미지=생성형 AI>

대구의 한 병·의원 진료실에서 환자가 스마트폰을 들고 의료진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최근 인공지능(AI)을 통해 증상과 치료 정보를 미리 확인한 뒤 병원을 찾는 사례가 늘면서, 진료 현장에서는 환자와 의사 간 판단을 둘러싼 갈등이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이미지=생성형 AI>

"의사 선생님 말씀과 좀 다른데요. 제가 챗GPT에 물어보니 제 증상은 그 병이 아니라던데, 다시 확인해 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지난 16일 오전, 대구 중구의 한 내과. 40대 환자는 의사의 진단이 내려지기 무섭게 스마트폰 화면을 내밀었다. 화면에는 대화형 AI가 분석한 '예상 질환 리스트'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70대 의사는 급당황했다. 이날 이 병원 진료실은 20분간 의학적 판단을 설명하는 자리가 아닌, AI 답변의 진위를 서로 묻고 답하는 토론장으로 변했다.


▲ 환자들의 이유 있는 변심


최근 챗GPT 활성화 탓에 의료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강화되면서 환자들의 태도가 변하고 있다는 말들이 의료계에서 많이 나온다. 단순한 포털 검색 수준을 넘어, 이제는 AI를 '사전 진단 도구'이자 '제2의 전문가'로 활용하는 환자들이 부쩍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직장인 이모(35·대구 수성구 대흥동)씨는 "병원은 대기 시간은 길고, 진료 시간은 짧아 충분히 묻기 어렵지만, AI는 내 사소한 증상까지 밤새도록 들어주고 논리적으로 설명까지 해준다"며 "의사의 말이 AI보다 너무 짧으면 왠지 건성으로 진료한다는 느낌마저 든다"고 털어놨다.


중학생 자녀를 둔 주부 박모(39·중구 대신동)씨도 "챗GPT에 아이 증상을 입력하면 당장 응급실을 가야 할지 말지 AI가 조언해 주니 요즘 많이 의지하게 된다"면서도 "가끔 의사 소견과 정반대 결과가 나오면 누구를 믿어야 할지 혼란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일부 의료진 "진단보다 'AI 오답 해명'에 진 빠져"


의료계 일부에선 이러한 현상을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닌 '신뢰의 위기'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대구 동구 용계동에서 개인 의원을 운영하는 한 전문의는 "최근 많은 수는 아니지만 일부 환자의 경우 증상을 파악하는 시간보다 'AI가 왜 틀렸는지'를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설득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쓴다"며 "진료 흐름이 끊기는 것은 물론, 의료진에 대한 환자의 기본적 신뢰가 무너진 것 같아 허탈할 때가 많다. 내가 요즘 더 공부를 해야하는 지 가끔 고민도 한다"고 토로했다.


대구지역 대학병원에 소속된 의사는 "AI는 수조 개의 데이터를 조합해 그럴듯한 답변을 내놓지만, 환자의 눈빛이나 숨소리, 미세한 임상 징후까지는 읽어낼 수 없다"며 "일반화된 정보에 사로잡힌 환자들에게 개인별 특수성을 이해시키는 것이 요즘 의사들의 가장 힘든 과업 중 하나가 됐다"고 했다.


▲'의사 대 AI' 상대화되는 의료 권위... 소통이 관건


전문가들은 AI 이용이 더 확산되면 의료의 권위 구조 자체를 바꿀 수 있다고 여긴다. 과거 환자들이 절대적으로 수용했던 의사의 말이 요즘은 '여러 선택지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어서다.


익명을 요구한 대구의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의료 현장의 갈등은 결국 소통 부재에서 비롯된다"며 "앞으론 의사가 병세 진단자일 뿐만 아니라, AI가 준 정보의 오류를 교정해주고 환자를 안심시키는 '소통 전문가'까지 돼야 할 것 같다"고 혀를 끌끌 찼다.


기술이 인간의 영역을 침범할수록 역설적으로 의사와 환자 사이의 '대면 신뢰'와 '인간적 유대'가 치료의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요즘 부쩍 힘을 얻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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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규

사실 위에 진심을 더합니다. 깊이 있고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기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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