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지대] AI에 응전하는 인간의 땀과 미학

  • 서병철 대구YMCA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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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2-23 06:00  |  발행일 2026-02-23
서병철 대구YMCA 사무총장

서병철 대구YMCA 사무총장

AI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시대다. 몇 시간 걸리던 작업이 몇 초 만에 완성되는 지금, 우리는 기술 진보가 가져온 경이로움과 동시에 실존적 불안을 마주하고 있다. 이러한 거대한 변화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중심을 지키고 희망을 찾아야 할까.


모종린 교수는 저서 '제3의 응전'에서 AI 위기 시대에 인간의 자율성, 창조성, 공동체성을 지켜내는 길을 제시한다. AI가 인간을 소외시키려는 순간,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은 맹목적 거부가 아니라 인간다움의 가치를 지키려는 적극적인 '응전'의 태도다.


대구YMCA에서 작년부터 AI 리터러시 교육을 진행하며 발견한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AI 사용법만 익힌 이들과 달리, 깊이 있는 독서 경험을 가진 청소년들은 AI의 답변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이게 정말 맞나?", "다른 관점은 없을까?" 바로 여기에 답이 있다. AI 시대에 필요한 역량은 단순한 기술 활용을 넘어, 서로 다른 영역을 연결하고 의미를 해석하며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통전적(統全的) 통찰력'이다. 이는 독서와 사유라는 정직한 '정신적 땀방울' 속에서만 길러진다.


이러한 교육 현장의 발견은 이선 몰릭 교수의 '듀얼 브레인'에서 제시한 '인간개입 원칙'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AI와 공존하기 위해 처리 과정에 인간이 끊임없이 개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AI가 아무리 정교한 답을 내놓더라도 최종 판단과 책임은 결국 인간의 몫이다.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기술을 통제하며 나아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공존의 문법이다.


이러한 대응의 뿌리는 19세기 윌리엄 모리스의 '미술공예운동'에 닿아 있다. 산업혁명으로 기계가 노동을 소외시키던 시기, 모리스는 인간의 정성이 깃든 '삶의 예술화'를 제안했다. 오늘날 AI가 창작의 속도를 극단적으로 높이는 상황은 기계화가 인간을 압도하던 당시와 많이 닮아있다. 그가 만든 장식과 가구, 책에는 장인의 고뇌와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에 사람들은 기꺼이 그 가치를 선택했다.


모리스는 "진정한 예술은 박물관에 있지 않고, 일상의 삶 속에 있다"고 했다. 자연을 보호하고 경관의 훼손을 거부했던 그의 태도는 아름다운 자연을 잃는 것은 곧 인간의 삶을 잃는 것이라는 경고였다. 인간의 자유와 행복은 거창한 기술 문명이 아니라, 숲길을 걸을 때 느끼는 고요한 평화와 그 길을 가꾸는 사람의 수고로움 속에서 피어난다.


AI가 수만 장의 이미지를 순식간에 생성할 수는 있어도, 그 과정에 깃든 인간의 고뇌와 노동의 가치까지 복제할 수는 없다. 도스토옙스키는 소설 '백치'에서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아름다움은 인간성을 지키려는 처절한 노력과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담긴 미학이다.


AI 시대의 '제3의 응전'은 기술을 도구로 활용하면서도 소중한 삶의 본질적 가치를 재발견하는 일이다. 오늘 저녁, AI에게 맡기던 일을 잠시 멈추고 책 한 권을 펼쳐보자. 주말에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숲길을 걸으며 바람 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기술이 빨라질수록 인간은 더 깊이 사유하고, 더 천천히 아름다움을 회복해야 한다. 알고리즘이 흉내 낼 수 없는 것은 인간의 정직한 수고다. 그리고 그 수고가 빚어낸 삶의 미학이 결국 우리를 인간답게 지켜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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