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과 창] 검은 개와 물고기와 비평, 그리고 하늘

  • 송종원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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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2-25 06:00  |  발행일 2026-02-25
송종원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문학평론가

송종원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문학평론가

간혹 문학비평이 무슨 일인지를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막연한 호기심에는 어색한 웃음으로 답을 대신하지만 진지하게 물어오는 이에게는 시 이야기를 먼저 꺼내놓는다. 시인들이 쓰는 시에 종종 '검은 개'가 등장할 때가 있다. 사례가 될 만한 시에서 앞부분 일부만 옮겨본다. '큰 개/ 크고 검은 개/ 크고 검은 난폭한 개/ 물통 옆에 크고 검은 난폭한 개/ 물통에 담긴 물고기를 보는 크고 검은 개'(이설야, 「개를 수식하는 말들에 관한 메모」 부분, 『내 얼굴이 도착하지 않았다』, 창비, 2022). 크고 검고 난폭한 개가 물통에 담긴 물고기 옆에 있다는 서술이 괜히 걱정을 부른다. 물고기와 검은 개의 관계가 어딘가 심상치 않고 알 듯 모를 듯하다. 영국의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은 본인의 우울증을 고백하며 자신에게는 평생을 따라다닌 '검은 개'가 있다고 표현한 바 있다. 속설에는 그때부터 '블랙독(black dog)'이 우울증을 나타내는 단어가 되었다고 한다. 혹 시인들은 이 속설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일까. 아니면 자신을 따라다니는 검은 그림자에서 자연스럽게 검은 개를 연상했을까. 무엇이 되었든 시인들의 시에 등장하는 검은 개가 꼭 우울증이라는 말은 아니다. 시 속 '검은 개'란 표현은 우울증처럼 한 사람의 삶에 난폭하게 끼어들어 큰 힘을 발휘하며 그 삶을 좌지우지하는 무언가의 통칭에 가깝다.


미세한 진동에도 크게 반응하는 물고기처럼 시인들은 그렇게 자신의 삶에 압력을 가하는 모든 종류의 힘에 예민하다. 또한 물고기에는 (눈)물과 고기(몸)의 이미지가 새겨져 있기도 하다. 시인과 물고기는 그렇게 닮았다. 물고기가 검은 개를 쫓아낼 수 없고 또 쫓아내지도 않듯 시인은 자신을 찾아온 그 커다란 무언가를 부정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겪어낸다. 그럼으로써 특별한 진실에 이른다. 그것은 바로 모든 사물에 내재한 '변화'이다. 실제로 앞서 인용한 시의 뒷부분을 보면 검은 개와 물고기가 미묘하게 다른 것이 되어간다. 물고기는 먹구름 속으로 날아가고, 개는 낮잠 속에서 먹구름을 먹다 물고기가 되어가며, 결국에는 꿈쩍도 않을 거 같던 거대한 돌문이 서서히 움직일 기미를 보인다.


이제 처음의 질문에 답하자. 비평은 작품을 매개로 작가 옆에서 무작정 그의 삶을 잠시 살아내는 일이다. 작품의 언어를 해석하고 평가하는 작업은 차후의 일이다. 우선은 그가 바람을 맞으면 함께 맞고 먼 길을 떠나면 뒤따라 가보는 일이 필요하다. 그러한 과정이 있어야 비로소 작가가 그린 삶 속에 스며든 불합리와 신비를 조금은 알아볼 수 있다. 시인이 검은 개를 주시하며 묵묵히 어떤 고된 시간을 견뎌내고 기다리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에 찾아든 다른 기미와 변화를 알아챈 것처럼, 비평가는 작가가 그린 삶의 자리를 같이 통과하며 인간의 삶 속에 어떻게 마법과 같은 순간이 숨겨져 있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물론 이때의 마법은 자연발생적이거나 전적으로 우연적인 것과는 거리를 둔다. 거기에는 작가 말고도 또 다른 누군가 여럿의 삶이 작용하고 있다. 앞에서 다룬 이설야의 시에서 그것은 먹구름과 새를 기르는 이로 그려지는데, 이는 아마도 '하늘'을 달리 표현한 말이겠다. 비평은 이 하늘까지를 말하는 작업이다. 우리의 삶이 우리도 모르게 기대고 있는 어떤 공적 지평 내지 문화적 높이까지를 드러내고 동시에 형성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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