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규 시인
1780년 음력 6월24일은 조선의 남자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 고종 칠순연에 가는 날이었다. 그의 나이 43세였고 정조 4년이다. 나는 잠시 국경 부근까지 이 조선의 남자와 동행하기로 했다. 밤사이 내린 폭우로 압록강은 물이 많이 불어났고 물살도 사납게 거칠어졌다. 압록강은 백두산에서 발원한 여러 물줄기 중 큰 강이라 할 수 있는데 청나라 쪽으로 가려면 이 강을 건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오락가락하는 소나기와 부족한 물자들, 그리고 말과 작은 나룻배에 의지해야 하는 후진적인 환경은 곳곳에서 발목을 잡았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이 여정이 순조롭지 않을 것을 예견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암은 이 모든 상황을 체계적이고 치밀하게 분석하고 기록했다. 600년 전 고루한 조선의 남자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그의 문체는 자유롭고 활달했고 예술적인 감성은 문장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성 한쪽 편이 한 필의 베를 펼쳐놓은 듯하고 성문은 마치 바늘구멍처럼 뻥 뚫려 그곳으로 내리쬐는 햇살이 한 점의 샛별처럼 보인다"라고 하는 이 세련되고 섬세한 남자를 따라가는 일은 행운이었다.
매 순간, 그의 철학과 선구자적 인식과 과학적이고 인문학적인 접근 방식은 훗날, 암울했던 조선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가름할 수 있게 한다. 또한 개혁적이고 획기적인 문장의 변혁까지, 사회 각 분야에 걸친 진보적인 그의 이론이 거쳐 간 자리는 크다고 할 수 있다.
"서양 사람들에게는 기하학이 있어 한 획의 선을 변증할 때도 선이라고만 해서는 그 세밀한 부분을 표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빛이 있고 없는 것을 표현하였다", 기하학과 명암과 선의 변증이라니! 그는 시대를 앞서 나갔고 모든 순간, 그 순간에 집중했다.
때로는 300명의 군졸들이 밤새도록 소리를 질러 호랑이의 침입을 막았다는 스릴 있는 여행길의 에피소드도 친절하게 들려주는 이 탁월한 조선의 남자, 연암 박지원은 한여름의 긴 여정이었지만 그 길 위에서 만난 사실과 사건들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나는, 그가 얼마나 조국을 사랑했는지, 조선의 개혁을 얼마나 간절하게 원했는지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언젠가 이 매력적이고 지적인 남자 연암을 그리워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국경 부근에서 그와 작별하고 나는 다시 21세기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결국 우여곡절 끝에 열하에서 청의 황제를 만나고 돌아온다. 그 후 사회문제를 풍자하기도 하고 변혁을 이룰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조선은 낙후했고 제도는 미비하고 불합리했다. 백성들은 가난하고 관리들은 부패했다. 진취적이고 개혁적인 연암에게는 이 모든 것이 타파해야 할 운명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는 두 달 동안의 여행에서 보고 들은 새로운 문물과 사상을 놓치지 않고 기록했다.
마침내 탁월한 북학론을 완성했고 연암체라는 새롭고 획기적인 문체의 혁명을 이루었다. 당시 그의 문체는 너무 파격적이어서 임금에게 반성문을 쓰기도 했다는 일화도 있다. 진취적이고 세련된 연암의 정신은 아직 선진 대한민국에 흐르고 있을 것이다. 열하일기는 이 시대 우리가 다시 읽어야 할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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