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찬 구조동물 외과센터 홍금동물병원 원장
평범한 진료를 보던 오후였다. 구조단체에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전라도의 한 공장에서 태어나 구조된 아이인데, 항문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우선 병원으로 보내겠다고 했다. 나는 아이를 보지도 못한 채 상태와 처치를 가늠하고 있었다.
몇 시간 뒤, 저녁 무렵 아이가 도착했다. 한 달 남짓, 1㎏을 조금 넘는 작은 몸. 항문은 없었다. 정확히는 항문무형성증(Atresia ani), 항문이 형성되지 않은 선천성 기형이었다.
복부는 단단히 부풀어 있었다. 작은 배 안에는 제 몸집만 한 변이 가득 차 있었다. 바닥에 내려놓으면 본능처럼 배변 자세를 취했다. 힘을 주다 멈추고, 아무것도 나오지 않으면 다시 괴로워했다. 그 동작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배설은 가장 기본적인 행위지만, 이 아이는 태어난 이후 단 한 번도 그것을 해보지 못했다.
시간은 늦었지만 수술을 미룰 수는 없었다. 다행히 직장은 형성돼 있었고 항문 개구부만 막힌 상태였다. 피부를 절개해 항문을 성형하고 숨어 있던 직장을 연결했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새로운 항문은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만큼 확보되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한 달 동안 배설을 하지 못해 주변 근육은 약해져 있었고, 장 안의 변은 돌처럼 굳어 있었다. 이를 조금씩 제거하고 장 운동을 도우며 배변 훈련을 반복했다. 아이는 살아온 시간만큼 병원에 머물렀다. 어느 날, 스스로 힘을 주어 작은 변을 밀어냈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당연한 일이 비로소 가능해진 순간이었다. 그 아이에게는 삶이 다시 열리는 시간이었다.
이 아이는 운이 좋았다. 발견되었고, 구조되었고, 병원에 도착했다. 수술을 받았고, 지역사회의 관심으로 후원이 이어졌으며 임시보호자도 구해졌다. 배설이라는 기능을 온전히 되찾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 시간을 함께 버텨줄 사람이 생겼다.
유기동물에게 '운'이란 결국 누군가의 관심이다. 치료는 의학적 판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재정과 장기적 관리의 부담이 함께 따른다. 그래서 유기동물 의료는 종종 숫자와 비용의 문제로 환원된다. 그러나 현장에서 마주하는 것은 언제나 한 생명이다. 작은 몸이 첫 변을 밀어내던 그날처럼, 생명은 단순하고도 절실한 자리에서 스스로를 증명한다.
어쩌면 유기동물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기적이 아니라, 한 번 더 돌아보는 시선일지도 모른다. 그 작은 관심 하나가, 누군가의 '운'이 된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도움이 절실한 생명이 있다. 그 존재를 알아보는 일, 그리고 가능하다면 손을 내미는 일. 유기동물 의료는 결국 그 작은 선택들 위에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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