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봄이 오는 소리

  • 이상학 대구문화예술진흥원 기획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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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3-04 14:04  |  발행일 2026-03-05
이상학 대구문화예술진흥원 기획홍보팀장

이상학 대구문화예술진흥원 기획홍보팀장

3월5일, 오늘은 경칩(驚蟄)이다. 24절기의 세 번째 절기인 경칩은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봄이 오는 소리에 깜짝 놀라 깨어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중국에서 비롯된 24절기가 우리의 실제 기후와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어 네 번째 절기인 춘분(春分)은 지나야 비로소 완연한 봄이 찾아오는 게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벌써부터 저 멀리서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생각에 마음 한편은 이미 새로운 계절이다.


물론 봄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입춘(立春)이다. 하지만 입춘은 대개 2월 초순에 찾아와, 봄소식을 전하기에는 생뚱맞기 그지없다. 어째서 아직 겨울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 봄의 시작을 알리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매서운 겨울 추위를 견뎌내고 있는 우리에게 이제 봄이 멀지 않았다고, 이 혹독한 시간도 곧 끝날 것이라고, 어떠한 곤란과 역경도 끝이 있다는 사실을 전해주기 위해서였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에게 봄은 시작과 희망을 알리는 계절로 각인돼 있다. 한 해의 시작은 1월이지만, 3월 또한 그 못지않게 새로운 출발을 맞이하는 분주함으로 가득하다. 저마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맞이하는 분주함 속에는 설렘이 함께한다. 왠지 기대를 걸고 싶고, 희망을 품어도 좋을 것만 같다는 마음들이 피어난다. 봄날의 햇살을 맞으며 출발선에 선 얼굴들은 이미 그 자체로 봄꽃들이다.


새출발이 아니어도 좋겠다. 지난했던 시간을 견딘 이들에게 봄은 그동안 버텨내느라 수고했다고, 볕이 잘 드는 여기 앉아 잠시 쉬었다 가라고 등을 쓸어준다. 따뜻한 봄볕의 위로를 받으며 쉬고 있노라면 지난 계절의 곤란함과 어려움들은 모두 먼 옛날의 일들처럼 아득해지기만 한다. 이런 생각만으로도 봄이 온다는 것이 그리 좋아질 수가 없다.


유희경 시인의 시 '봄'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하나 둘 셋, 그리 熱을 세니 봄이었다' 숫자 '열' 대신 동음이의어인 '熱(열)'을 쓴 것이 흥미롭다. 그러고 보니 바람은 따스하고 볕은 포근하니 봄은 열기와 함께 찾아오는 것이 아닌가. 겨우내 얼어있던 땅을 덥히고, 잠들어 있던 생명들을 덥히고, 웅크린 채 버티고 있던 마음들을 덥히고 나면 세상은 온통 땀이 날 만큼 열기로 가득 찰 것이다. 시작과 희망, 위로와 열기가 모두 봄을 가리키는 같은 말들임을 깨닫는 순간, 봄은 어느새 한 발짝 다가온다.


눈을 감고 하나 둘 셋, 열을 세어 본다. 그리고 눈을 뜬다. 세상을 따뜻하게 데울 바람과 함께 저 멀리서 봄이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는 것만 같다. 어수선하고 밝고 환한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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