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지대] 아리랑이 울린 바다, 국가는 책임을 인양해야 한다

  • 이향숙 산학연구원 기획실장
  • |
  • 입력 2026-03-09 06:00  |  수정 2026-03-08 21:03  |  발행일 2026-03-09
이향숙 산학연구원 기획실장

이향숙 산학연구원 기획실장

바닷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던 날이었다.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의 '추모 광장'에서 우리는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비바람이 얼굴을 때렸고, 차가운 바닥이 몸을 움츠리게 했다. 바다 아래 갱도에 남겨진 183명의 이름 앞에 섰다. 추모의 광장에 울린 아리랑은 바다 위를 맴돌며 돌아오지 못한 이름을 불러 세웠다. 그 순간만큼은 말보다 침묵이, 위로보다 함께 있음이 더 필요했다. 장생탄광 수몰 사고 84주기를 맞아 현지를 찾은 '장생탄광 희생자 귀향추진단'의 6차 방문 일정이었다. 회차마다 인원은 달랐지만, 이 문제를 놓지 않겠다는 뜻만은 같았다.


1942년 2월 3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조세이탄광 해저 갱도에서 발생한 수몰 사고로 조선인 136명과 일본인 47명, 모두 183명이 목숨을 잃었다. 내 고향 영천 사람도 14명이 있다. 우리가 추모의 광장에 섰던 날, 요동치는 수면 아래 갱도로 이어진 물길 속에는 84년 전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시간이 잠들어 있었다.


그 시간을 마주하는 잠수사를 갱도 근처에서 만났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쉽게 고개를 들지 못했다. 여섯 번째 방문에야 국민 상주로 함께했다는 사실이 뒤늦은 책임처럼 느껴졌다. "기다려 달라"며 고국의 흙 한 줌을 바다에 뿌리던 방문단의 모습을 기억한다. 차가운 물결이 갱도 입구를 파고들 듯 마음이 시렸다.


그러나 비극은 과거에만 머물지 않았다. 유해 수습에 참여하던 대만 출신 잠수사가 작업 중 이상 징후를 보였고 끝내 숨졌다. 그는 웨이 수 잠수사였다. 우리는 그가 헬기로 인양돼 구급차로 옮겨지는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 장면은 '추모'의 의미를 바꾸어 놓았다. 과거를 기리는 일은 현재의 위험을 외면한 채 완성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목격했다.


남겨진 이름은 기억을 넘어 책임을 요구한다. 지금까지 길을 열어 온 것은 시민이었다. 일본 시민단체의 조사와 잠수사들의 헌신으로 유해 수습은 이어져 왔다. 그날 광장에서 정부 대표단은 일본 시민단체 '조세이탄광 수몰 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에 행정안전부 장관 표창을 수여했다. 늦었지만 필요한 예우였다. 시민의 연대가 역사를 움직였음을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표창만으로 이 문제가 마무리될 수는 없다. 안전과 의료, 장비 등을 개인의 용기와 헌신에 기대는 구조라면 또 다른 희생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추모가 기억에 머물지 않으려면 제도와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최근 한일 양국 정상은 조세이탄광 수몰 사고 희생자 유해의 신원 확인을 위해 DNA 감정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합의는 출발점일 뿐이다. 실행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책임은 완성된다.


6차 방문 일주일 뒤, 명절을 앞두고 우리는 경북 고령 반룡사에 다시 모였다. 웨이 수 잠수사를 배웅하기 위해서였다. 바닷바람에 몸을 떨던 우베의 날과 달리, 그를 배웅하는 날은 유난히 포근했다. 그 따뜻함이 오히려 가슴을 더 저미게 했다.


"국가가 해야 할 책임을 당신에게 지게 해서 미안합니다. 편히 잠드세요."


누군가의 읊조림은 반룡사에 울려 퍼진 애도이자 다짐이었다. 바다 아래에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름들이 있고, 그 곁에는 국가가 져야 할 책임 또한 잠겨 있다. 그 책임이 인양될 때까지 우리의 추모는 끝나지 않는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