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기획의 기술

  • 이창수 유락·야행성동물 대표
  • |
  • 입력 2026-03-11 06:00  |  수정 2026-03-10 14:38  |  발행일 2026-03-11
이창수 유락·야행성동물 대표

이창수 유락·야행성동물 대표

얼마 전 '대구에서 기획자로 살아남기'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그렇다. 나의 직업은 기획자. 10년 동안 언론계, 스타트업씬, 대구 자영업씬을 이리저리 거치면서도 기획자라는 정체성만큼은 한결 같았다.


그런데 웬걸, 강의를 준비하려고 보니 내 스스로 기획은 뭐다 정리해놓은 게 하나도 없는 게 아닌가. 아마 그동안의 프로젝트 대부분이 생존(?)에 직결되어 있어 머리보다는 몸으로, 본능으로 헤쳐왔기 때문일 것이다. 급하게 지난날을 떠올리며 10개의 키워드를 추렸고, 나름의 '기획10계'를 내놓을 수 있었다. 여기서 그 핵심을 소개한다.


일단 기획은 '훔치는 것'이다. 영리하게, 똑똑하게, 교묘히 잘 베끼면 그만인 것이다. 기자 시절 전국의 수습기자들에게 '기획기사 쓰는 법' 강의를 2년 정도 했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쓸 게 없다' '발제 때문에 괴롭다'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았다. 5년, 10년 전 기사, 그래도 없으면 20년, 30년 전 기사들을 샅샅이 훑고 주목받은 아이템, 방법론들을 지금 버전으로 만들면 그만인데 말이다.


베껴서 문제 되면 어떡하냐고? 그건 문제 됐을 때 생각하면 될 일이다. 내 경험상 정말 '문제'에 이르는 경우는 많아야 1%고, 그전에 제풀에 고꾸라지는 경우가 대다수다. 하나를 베끼면 표절이지만 열개를 베끼면 연구라고 했다. 표절이 무서우면 연구를 하면 되는 것이고, 그 하나마저도 출처를 밝히면서 "너무나 존경스러워 내 식대로 해석해봤다" 하면 '오마주'가 된다.


그밖에도 섞어라, 뒤집어라, 매달려라, 숨겨라, 벌려라, 떠들어대라, 속여라, 팔아라, 탓하라 등의 고급(?) 기술들을 공유했지만, 결국 핵심은 잘 베끼는 것이다. 맘껏 베끼되, 딱 '한 끗'만 다르게.


"유능한 예술가는 베끼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피카소), "창의성이란 단지 연결하는 것"(스티브 잡스), "독창성이란 사려 깊은 모방"(볼테르)… 이런 위대한 인물들마저 이렇게까지 "제발 베껴보시라" 하는데 아무렴.


조만간 새로운 '오마주'들을 안팎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내부는 '야행성독서'이고 외부는 '대백 프로젝트'. 전자는 야간 문화 진흥을 위한 심야 독서 개더링이고, 후자는 대구의 젊고 유망한 스몰브랜드 100개를 소개하는 전시 프로젝트다. 이렇게 떵떵거렸으니 이젠 되돌릴 수도 없겠지(기획10계 '떠들어대라'). 이 인간이 어떻게 베끼고 어떻게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지 궁금하다면 유락과 야행성동물의 행보를 주목해 보시길.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생활/문화인기뉴스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