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의 문학 향기] 천왕성

  • 정만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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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3-13 06:00  |  발행일 2026-03-13
정만진 소설가

정만진 소설가

1781년 3월13일 영국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과 그의 누이동생 캐롤라인 허셜이 천왕성(天王星)을 발견했다. 천왕성의 서양식 표기는 우라노스(Uranus)로, 그리스 신화 제우스의 할아버지 이름이다. 목성을 '제우스', 토성을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로 부르는 데서 짐작되듯이 서양에서는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별 이름을 따오는 것이 관행이었다.


우라노스가 천왕성이 된 것은 중국식 번역의 결과이다. 우라노스를 '天王'으로 옮겨오던 중국은 새로 발견된 별을 서양이 '우라노스'라 부르자 星을 덧붙여 '天王星'이라 명명했다. 그 이름이 우리나라로 넘어와 '천왕성'이 된 것이다. '천왕'이라면 우리나라에서는 대략 하늘님을 뜻하니 하늘의 우라노스별도 못마땅하게 여길 일은 없을 법하다.


별 이름은 발견자가 작명하는 것이 천문학계의 오랜 관례였다. 허셜 오누이는 자신들이 발견한 별 이름을 우라노스로 정할 생각이 없었다. 오누이는 까마득한 그리스·로마 신화의 이름이 아니라 당시 영국 왕의 이름을 선택했다. 고리타분한 범주를 벗어나 새 전통을 창조하려는 마음의 발로였다.


하지만 전 세계 천문학자들은 허셜 오누이의 창의적 작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허셜 오누이가 붙인 이름은 잊혔고 서양 통례대로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우라노스 신에게 영광이 돌아갔다.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주류의 기득권을 뛰어넘어 '새 역사를 창조(국민교육헌장의 구절)'하는 과업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1807년 3월13일(음력) 태어난 김삿갓의 인생도 비슷한 교훈을 준다. 김병연은 수양대군의 쿠데타에 적극 부역한 공로로 부귀영화를 만끽해온 한명회가 한강 물가에 정자(압구정)를 지어놓고 '젊어서는 사직을 붙들고(靑春扶社稷) 늙어서는 강호에 누웠네(白首臥江湖)'라는 편액을 걸자 '젊어서는 사직을 위태롭게 하고(靑春危社稷) 늙어서는 강호를 더럽히네(白首汚江湖)'라고 고쳐버렸다.


김병연의 삶이 순탄하지 못했을 것은 자명하다. 기득권 주류에 맞서면서 뜻을 이루기는 쉽지 않다. 그는 끝까지 세조에 대항해 생육신이 되었다. 그래도 자신의 삿갓을 두고 '취하면 걸어두고 꽃구경(醉來脫掛看花樹) 흥나면 벗어들고 달구경(興到携登翫月樓)'식 노래를 부르며 살아간 그의 삶은 자유인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숙주나물이 인간의 존엄을 무너뜨린 자를 꾸짖는 작명이라면, 고사리 캐기도 거부한 백이숙제의 삶은 만물의 영장만이 누릴 수 있는 빛나는 고독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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