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함흥영생고보 교사 재직 시절의 백석. 사진은 1937년 함남함흥영생고보 졸업 사진첩에 실렸다. <위키백과 제공>
악몽. 사람들과 이야기하다가 반복해서 꾸는 악몽이 있다고 들었다. 해외 유학을 자주 다녔던 누구는 공항에서 여권이 없어지는 악몽을 꾼다고 했다. 아직도 수능 시험장에 갇혀 있는 사람도 있고, 누군가 쫓아오는 상황을 어지럽게 설명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반복해서 꾸는 악몽은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공간에서 눈을 뜨며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무엇을 하고 도망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아무도 모르는 공간에서 행하고 있었다. 왜 그런 꿈을 꾸는 걸까. 아마도 '집' 때문일 것이다. 나는 집을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것일지도. 그러나 한 번도 집을 가져본 적이 없다. 18번 이사를 했다. 이사가 너무 싫어서 집을 가지고 싶다. 방음이 잘되는 집. 깨끗한 집. 수납공간도 많았으면 좋겠고. 침실은 아득했으면 하고 바라는 집.
집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고 그러다가 떠오르는 시가 있다. 학교 국어 선생님은 백석을 좋아했었다. 백석 시가 문제집에서 나오면 시를 극찬하며 몇 번이나 풀이를 해주었다. 객관적 상관물은 갈매나무이며 희망을 뜻하고, 대조적 정서가 반복되고, 감각적인 묘사가 있으며, 사투리와 구어를 사용하여 삶의 생동감을 풀어내었고, 화자의 심리를 투영하는 여러 장치가 있다는 풀이를 아직도 나는 기억하고 있다. 문제를 푸는 방법으로 시를 바라보는 것이 썩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이 든다.
백석의 '백석전집' 표지. <실천문학사 제공>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샅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위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지두 않고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백석의 '백석전집'(실천문학사·2003)
시의 제목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다. 풀어보면 남신의주 유동에 있는 목수 박씨가 운영하던 방이다. 시의 화자는 그곳에서 누군가에게 쓰는 편지의 형식으로 문장을 쓰고 있다. 그 방에서 무기력한 삶을 떠올리다가 '그러나~고개를 들어' 부분부터 나의 슬픔을 운명론적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그러다 끝에서는 삶을 반성하며 성찰하고 희망적인 삶으로 나아가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시가 가진 힘은 크다. 화자와 같이 추운 겨울을 함께 겪고 낙담하게 되다가 희망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다. 나의 집. 희망은 언제나 외로운 것이니까. 나의 집도 외롭게 느껴진다. 집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고 그러다가 떠오르는 시가 있다. 그러다가 떠오르는 시가 있다는 것이 그럼에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으로 집값을 보고 있으면 희망이 사라지다가도, 나의 침실은 있으니 다행이라며 또 희망이라는 걸 한다.
얼룩말 상자/배진우 지음/민음사/188쪽
내 첫 번째 시집인 '얼룩말 상자'에는 공간을 담고자 했다. 시집이 정말 집 같은 분위기를 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만들었다. 시집 속 시 제목도 '203호'나 '계약'이나 하는 식으로. 집을 떠올리면 연상되는 것들로 만들고 싶었다. 시집을 묶을 때에도 가장 큰 고민은 아마도 집이었으니까. 내 걱정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아는 작가가 말했다. "집은 아직이어도 시집은 만들었으니 다행이라고." 농담하고는 웃으라며 나에게 눈치를 주었다. 내 시집은 지붕도 없고 기둥도 없고 창문도 없지만 희망을 하게 한다. 다음에는 더 좋은 시를 쓸 것이라는 희망. 이 세상에서 의미 없는 고민은 없을 것이라는 희망. 희망을 희망하게 만드는 것.
"이사가 싫어 집을 사고 싶어요"라고 말하니, "이사가 가고 싶어서 집을 팔고 싶어질 걸"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언젠가는 그럴 것도 같았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때에도 희망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면 좋을 것만 같다.
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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