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을 손질하는 손길로 하리항이 분주하다. 울산 주전의 미역말리기는 음력 2월부터다. 미역을 채취하고 붙이고 말리는 이때가 일 년 중 가장 바쁜 시기라 한다.
찹찹찹, 긴 미역줄기의 끝단을 잡고 사각의 건조대 위에 찹, 올리고는 서너 번 찹찹찹 들썩이며 고르게 펼친다. 늘 미역을 '넌다'라고 생각했는데, 미역을 '붙인다'라고 한단다. 찹찹찹, 미역 붙이는 소리, 찹찹찹, 자꾸 되뇐다. 잊지 않으려고. 어느 마을에서는 보리 이삭 패는 시기에, 또 어느 고장에서는 유채꽃 필 때 미역을 말린다는데, 울산 주전의 미역말리기는 음력 2월부터다. 미역을 채취하고 붙이고 말리는 이때가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라 한다.
미역을 붙인 건조대가 도로 벽에 비스듬히 누워있다. 멀리 보이는 탑이 성지방돌 제당 조형물이다.
◆ 하리항
하리항이 분주하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여인들은 미역을 손질하고, 거문고를 타듯 건조대를 앞에 두고 나란히 앉은 여인들은 미역을 붙이고 있다. 지난 가을부터 공들인 미역을 뭍에 부려놓은 오늘, 햇볕이 따뜻해 미역 붙이기 좋은 날이라는 것을 그녀들은 미리 알고 있었을 게다. 미역 작업을 하는 그녀들은 해녀다. 이른 새벽 바다에 들어가 미역을 따고, 곧바로 손질해 붙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아무 말도 없지만, 들뜬 신명이 느껴진다. 주전 돌미역은 옛날 진상품이었고 지금은 주전 해녀들의 주 수입원이다. 주전에 등록되어 있는 해녀는 50여 명, 그 중 하리에는 스무 명 남짓 산다고 한다. 해녀가 직접 운영하는 횟집도 여럿이다.
주전동의 바닷가에는 가장 북쪽에 몽돌해변이 있고, 그 아래에 주전항, 그 아래에 큰불항이 있는데, 또 그 아래에 있는 것이 하리항이다. 하리는 아랫마을이라는 뜻이고, 하리항은 주전동 남쪽 해안의 중심이다. 내항에 배가 두 척, 물 밖에 또 두 척이다. 물량장에는 각종 어구들이 무척 어지럽게 흩어져 있어 소위 생활감이라는 것이 고스란하다. 다른 배들은 얼마나 먼 바다로 나간 것일까. 가까운 바다도 먼 바다도 텅 비어 있다. 좁은 해안 길 따라 남쪽으로 내려간다. 낮은 파도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온다. 바다는 온통 바위다. 이 바위들은 대개 미역밭으로 노랑돌, 선돌, 끝돌, 큰불, 생이돌, 물목, 돔방, 지경 등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미역을 붙인 건조대가 도로 벽에 비스듬히 누워있다. 맞은편에서 몇몇 여인들이 미역을 손질하고 또 미역을 붙인다.
아랫마을 제당이 있었던 성지방돌 광장의 조형물. 사라진 주전마을의 모든 제당을 기념하고 있다. 색색의 둥근 벤치는 주전의 또 다른 주산물인 전복을 형상화한 것이다.
주전마을의 맨손잡이체험장. 이곳에서 고둥이나 성게를 잡을 수 있고 직접 잡은 해산물은 가져갈 수 있다고 한다.
길이 휘어지는 모퉁이 바닷가에 반달형의 작은 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큼지막한 바윗돌이 유난스레 모여 나지막한 단을 이루는 자리다. 이곳을 '성지방돌'이라 한다. '성지방'은 '지극정성으로 제를 올리는 곳'이라는 뜻으로 예전에는 이곳에 제당이 있었다. '아랫마을 제당'이라 불렸고 작은 지붕의 턱까지 돌담을 쌓아 올린 모습이었다. 주전에는 원래 10개의 제당이 있었다. 그러다 2005년 경로당을 새로 지으면서 모든 위패를 경로당 2층에 모셨다. 제당마다 동제를 지내기가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마을 곳곳을 지키던 제당은 없앴다. 꼭 그래야만 했나 싶지만, 신 없는 신의 집이란 무겁다. 문득 무섭기도 하다. 지금 광장에는 4개의 탑으로 구성된 조형물이 서 있다. 사라진 주전마을의 모든 제당을 기념하는 탑이다. 아랫마을 성지방돌 제당은 주전 마을에서 가장 영험하고 신성시 여기던 장소였다고 한다.
광장 아래 바다 위를 몇몇 사람이 걷는다. 돌들이 돌다리처럼 놓여 있는데, 자세히 보면 원형이다. 원이 여러 개 잇대어져 꽃잎 같기도 하다. 도로에 서 있는 안내판을 보니 '주전어촌체험마을 맨손잡이체험장'이라 한다. 이곳에서 고둥이나 성게를 잡을 수 있고 직접 잡은 해산물은 가져갈 수 있다고 한다. 주먹만 한 소라를 건져 올리면 얼마나 기쁠까. 그래서 주먹만 한 것들을 미리 뿌려놓기도 한단다. 주전에서는 맨손잡이 체험 외에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카누타기, 바다낚시, 스킨스쿠버, 미역떡 만들기 등이 있고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해녀체험이다. 현역 해녀들에게 물질을 배우고 얕은 바다에서 전복과 해삼, 소라, 멍게 등을 직접 채취해볼 수 있다.
보밑포구. 집 한 채가 외따로 덩그러니 있던 바닷가에 도로가 생기고 방파제와 포구가 생기면서 어엿한 마을이 됐다.
◆ 보밑포구
알록달록 무지개 색 연석이 주전해안길 따라 이어진다. 멀리 바다 한가운데 등대 하나가 희미하다. 태양열로 불을 밝히는 등대로 '이득등대'라 부른다. 등대가 서 있는 자리를 옛날 '이득'이라 했는데, 간조 때면 물 위로 1m 정도 모습을 드러내는 언덕으로 주위에 암초군이 문어발처럼 뻗어 있다고 한다. 오랫동안 하도 사고가 많이 나 1988년에 등대를 세웠다. 등대 너머 수평선에 배 한 척이 나타난다. 희미한 것이 꼭 유령선 같다. 배는 이득에서 멀찍이 물러나 아주 조심스럽게 남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울창한 솔숲 캠핑장을 지나 주전천교를 건너면 보밑길이 시작되고 길 끝에 자그마한 보밑포구가 자리한다. 보밑은 주전동의 남쪽 끝 마을이다. 봉대산 아래라 해서 '보밑'이라 한단다. 예전에는 봉대산 골마다 사람들이 살았고 바닷가에는 집 한 채가 외따로 덩그러니 있어 '외짓거리'라 했다. 이후 골짜기의 집들은 정책적으로 철거되었지만 갯가의 외딴집은 존속되어 삶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때는 집안까지 바닷물이 들이닥치는 일이 예사였고 애써 일군 고구마 밭이 자취도 없이 사라지곤 했었다. 지금은 도로도 생겼고 방파제와 포구도 있다. 한 채였던 집도 여럿이다. 횟집이 세 개, 펜션과 민박도 있다. 요기에서 저기까지 한눈에 보이는 집들이 전부지만 어엿한 마을이다.
포구에는 고무보트까지 합해 6척의 배가 정박되어 있다. 어부의 배는 재일, 경성, 금성 등 세 척, 나머지는 관광객이나 낚시꾼을 위한 것이 아닐까 싶다. 작은 물량장에는 그물과 통발 따위가 부려져 있다. 옛날 보밑마을의 주산물은 멸치였다. 일대에서 유일하게 모래사장이 있었고 그 해안을 '후리개안'이라 불렀다. 멸치의 풍어를 빌고, 멸치를 삼는 후리막을 돌봐주던 제당도 있었는데 이제는 없다. 포구 남쪽으로 보이는 커다란 건물은 현대중공업 미포조선소다. 공장이 들어서기 전 미포만은 울산 동구에서 가장 큰 멸치어장이었다. 하리항과 꽤 떨어져 있는 보밑은 위치나 주업에 있어 미포와 훨씬 긴밀했을 것 같다. 미포의 멸치잡이는 금지되었는데, 보밑의 멸치잡이는 어찌 되었을까. 유령선 같던 배가 훌쩍 다가와 있다.
보밑포구에서 도로는 끝나지만 남쪽으로 산책로가 이어진다. 포구 남쪽으로 보이는 커다란 건물은 현대중공업 미포조선소다.
바닷가 울창한 솔숲에는 피크닉장이 조성되어 있다. 예약제로만 운영되는데 주말이나 휴가철이면 어마어마한 인기를 자랑한다.
보밑포구에서 도로는 끝나지만 남쪽으로 산책로가 이어진다. 굉장한 기암괴석의 바다다. 괴석들 사이에 초소가 여럿 보인다. 바닷가 울창한 솔숲에는 피크닉장이 조성되어 있다. 울산 동구청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피크닉장이다. 예약제로만 운영되는데 주말이나 휴가철이면 어마어마한 인기를 자랑한다. 커다란 돌탑 뒤 솔 그늘에 앉은 정자는 월남참전용사들이 지은 '월남정'이다. 정자 앞 동백나무에 꽃망울이 콩처럼 단단하다. 매끈한 동백 잎 사이로 바위에 우뚝 선 채 낚싯대를 드리운 한 사내가 보인다. 뒷모습이 나른하다. 산책로와 해변을 경계 짓는 화강암 돌단에서 방가지똥 노란 꽃이 고개를 내민다. 그 아래에는 하얀 별꽃이 까르르 피어 있다. 뭐야, 봄이 왔네.
글·사진=류혜숙 전문기자 archigoom@yeongnam.com
>>>여행정보
경부고속도로 경주, 부산 방향으로 간다. 언양 분기점에서 16번 울산선을 타고 울산IC에서 내린다. 톨게이트 지나 시청, 울산대학교 방면 오른쪽으로 나가 신복교차로에서 울산혁신도시 방면으로 좌회전해 북부순환도로를 타고 직진한다. 연암IC교차로에서 31번 국도 무룡로를 타고 경주 감포, 울산 강동동 방향, 무룡나들목에서 오른쪽 주전동 방향으로 가다 회전교차로에서 9시 방향으로 나가면 주전동 해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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