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경주시 용강동 원지길 40 산책로에서 살구꽃이 활짝 피어 봄기운을 전하고 있다. <장성재 기자>
23일 오전, 회사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전날 지면에 실린 벚꽃 포토뉴스를 두고 "벚꽃이 아니라 살구꽃으로 보인다"는 독자제보가 들어왔다는 내용이었다. 봄철 경주에서 분홍빛 꽃을 보고 벚꽃이라고 부르는 일은 그다지 낯설지 않다. 오히려 너무 자연스럽다. 보문관광단지와 대릉원 돌담길, 흥무로 벚꽃길, 암곡 와동 벚꽃터널이 도시의 봄을 오래 대표해 온 탓에 경주에서 봄꽃은 대개 먼저 벚꽃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하지만 이날 전화 한 통은 그 익숙한 계절감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다시 현장으로 가야 했다.
경주시 용강동 원지길 40 산책로를 다시 찾았다. 두산위브트레지움 맞은편 길가에 서 있는 나무 몇 그루가 전날보다 풍성하게 연분홍 꽃을 피웠다. 처음 현장에서 봤을 때만 해도 벚꽃이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경주시는 벚꽃알리미를 통해 올해 경주 벚꽃 개화 시기를 이달 26일로 안내한 상황이었고 예상보다 일찍 핀 벚꽃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멀리서 보면 '벚꽃이 벌써 폈다'는 말이 절로 나올 만한 풍경이었다. 문제는 그 꽃의 이름이 더는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벚꽃인지, 살구꽃인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대로변 인근 꽃집이었다. 가게 주인 A씨는 출근길마다 그 길을 차로 지난다고 했다. 그는 "오늘 아침에도 보고 왔는데 많이 폈더라구요, 난 벚꽃으로 알고 있는데"라고 말했다. 곧바로 길 건너 식당으로 갔다. 여기서는 전혀 다른 답이 나왔다. 식당 주인 B씨는 "나무를 오래 봐왔다"며 "나는 살구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여름에 나무 밑에 열매가 떨어져 있는 걸 봤다"는 것이다. 그 말은 꽤 구체적이었다.
지난해 열린 경주 대릉원 돌담길 벚꽃축제 현장에서 상춘객들이 만개한 벚꽃 아래 공연을 즐기고 있는 모습. <장성재 기자>
기자 역시 주변 지인들에게 사진을 보내며 확인을 부탁했다. 벚꽃인지 살구꽃인지 의견을 물었다. 한 지인은 AI 이미지 검색 결과 화면까지 캡처해 보내왔다. 화면 속 AI 개요에는 "사진 속의 꽃은 벚꽃입니다"라는 문장이 떠 있었다. 파란 하늘 아래 만개한 연분홍 꽃, 화면 속 이미지는 분명 누구에게나 벚꽃처럼 보일 만했다. 사람도 헷갈렸고 AI도 벚꽃이라고 답했다. 익숙한 이미지가 사실을 앞질러가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취재는 결국 현장에서 마무리됐다. 경주시청 도시공원과 녹지팀에게 다시 연락했고 손창호 팀장이 직접 현장에 나왔다. 나무 앞으로 다가가 꽃과 가지, 식재 형태를 살핀 뒤 그는 말했다. "살구나무네요. 살구꽃이네요." 혼선은 그렇게 정리됐다. 전날 '벚꽃'으로 불렸던 꽃은 이날 현장에서 '살구꽃'으로 바로잡혔다. 그는 이어 "매화가 제일 먼저 피고 그다음에 살구 피고 그다음에 벚나무가 핀다"며 "누구나 헷갈릴 수 있다"고 했다. 개화 초반에는 꽃의 색감과 전체적인 인상만으로는 일반인이 세 꽃을 정확히 가르기 쉽지 않다. 멀리서 볼수록, 사진으로만 볼수록 더 그렇다.
실제로 매화와 살구꽃, 벚꽃은 봄 초입에 시민들이 가장 많이 헷갈리는 꽃들이다. 세 나무 모두 장미목 장미과 벚나무 속하며 색이 비슷하고 개화 시기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눈으로 세 꽃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꽃받침'과 '꽃자루'를 유심히 살펴야 한다고 조언한다. 벚꽃은 약 2~3cm의 긴 꽃자루 끝에 꽃이 매달려 바람에 하늘거리는 반면, 매화와 살구꽃은 가지에 바짝 붙어서 피어난다. 특히 헷갈리기 쉬운 매화와 살구꽃은 꽃받침의 모양으로 구별할 수 있다. 매화는 붉은 꽃받침이 꽃잎을 감싸듯 붙어 있지만 살구꽃은 꽃이 피면서 꽃받침이 뒤로 발라당 젖혀지는 뚜렷한 특징을 가진다. 또한 벚꽃은 꽃잎 끝이 톱니처럼 얕게 갈라져 있어 둥근 형태의 다른 두 꽃과 차이를 보인다.
23일 경주시 황성로 64번길에 있는 벚꽃나무 기둥에 벚나무 특유의 가로 무늬가 나타나 있다. 벚나무와 살구나무는 수피 차이로도 구별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장성재 기자>
독자제보를 한 산림연구업계의 곽후식씨도 꽃보다 나무껍질, 이른바 수피를 먼저 봐야 한다고 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벚나무는 수피에 가로 방향으로 오돌오돌하게 돋은 무늬가 비교적 뚜렷하게 나타나는 반면, 살구나무는 암갈색에 가까운 더 진한 빛을 띠고 세로로 주름이 난 듯한 결이 더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사진 속 나무를 보고도 그는 그 차이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돌아보면 이날 취재는 꽃 이름 하나를 확인하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기자에게도 오래된 원칙을 다시 일깨운 시간이었다. 사진만 보고 인상만 믿고 심지어 AI의 답변만 보고 사실을 확정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답을 준 것은 결국 다시 찾아간 현장이었다. 나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고 꽃도 전날과 다르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바라보는 쪽의 이름뿐이었다.
장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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