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규 시인
연못가에 새로 핀
버들잎을 따서요
우표 한 장 붙여서
강남으로 보내면
작년에 간 제비가 푸른 편지 보고요
대한 봄이 그리워
다시 찾아옵니다
세속의 어느 것 하나 끼어들 수 없을 정도로 맑고 투명하다. 꽉 찬 백지이면서 크리스탈 쟁반 소복한 한 묶음의 빛다발이다. 시인의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봄이 오는 이 무렵이면 중얼거리게 되는 동시 '봄 편지'이다. 우주의 저편에서 어떤 따뜻한 손이 바람결에 우표를 붙여 이곳으로 보냈는지, 어떤 커다란 분이 봄바람을 불어넣어 주셨는지 올해도 틀림없이 봄이 찾아왔다, 매섭게 추웠던 그 겨울을 건너서.
가끔 집 근처 수성못 둑길을 걷는다. 운동도 운동이지만 도시의 배꼽 같은 이곳을 걷는 동안 나는 조금 더 깊어진다. 머리도 맑아지고 삶이 조금 더 진지하고 숙연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계절이 변화하는 미세한 기미를 미리 느껴보기도 하고 때로는 한겨울에도 이미 봄이 오고 있다는 기분 좋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스쳐가는 바람결에도 나뭇잎의 미세한 변화에서도 계절의 움직임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작지만 신비한 체험이고, 이런 체험은 감성을 부풀릴 수 있다는 점에서 시인으로서도 행복한 일이다. 미세하지만 이렇게 우주의 큰 이치 안에 얽혀 있는 나의 존재를 실감할 때, 온 우주가 나를 중심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생각에 미칠 때, 내가 이 크고 오묘한 우주의 일원이라는 인식에 이를 때, 나라는 존재는 더 크고 소중해 진다.
"회사에서 창밖을 내다보다가 네 생각이 나서 편지를 쓴다. 그곳 생활은 어떤지, 모두 잘 있는지, 건강은 어떤지, 아버지는 언제나 너의 건강이 걱정이다. 여기는 모두 잘 있으니 염려하지 말고 부디 건강을 잘 챙기도록 해라. 약간의 돈을 부치니 잘 먹고...."
군의관인 남편을 따라 강원도에서 1년을 보낸 적이 있다. 몸이 약한 막내딸을 걱정하시는 아버지의 문장 마디마디마다 울컥했던 그때가 다시 떠오른다. 그리운 아버지의 편지는 간절함과 기다림과 우표의 힘으로! 먼 길을 달려왔다.
많은 날들이 지나가고 서랍 속에 꼭꼭 넣어둔 색바랜 봉투를 다시 꺼낸다. 그날처럼 나는 다시 눈시울이 붉어진다. 우체통과 공중전화 부스와 삐삐도 사라지고, 이제는 안부와 인사가 너무 쉽고 너무 많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기다리지 않아도 밤낮 없이 도착하는 시끄러운 기계음들.
조금 불편하고 느리더라도 기다림과 설렘으로 가득했던 그때의 감동을, 기계음과 게임에 절어 있는 요즘 아이들에게 전해줄 수는 없을까. 계절이 오고 가는 소리를, 우주의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 줄 수는 없을까.
때가 되면 봄은 늘 당연한 듯 오지만 봄이 오는 것은 어쩌면, "연못가에 새로 핀/ 버들잎을 따서요/ 우표 한 장 붙여서/ 강남으로 보내면"이라는 예쁜 노래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엉뚱한 생각 문득.
저기 우주의 저편에서, 이마에 우표를 달고 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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