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학 대구문화예술진흥원 기획홍보팀장
동백이 좋다. 늦겨울 추위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붉은 꽃을 피워내는 동백이 좋다. 봄은 멀지 않았다고, 겨울 같았던 마음에도 꽃이 필 거라고, 불을 지피듯 마음을 덥히는 동백이 좋다. 동백을 찾아 매년 남도(南道)로 떠나던 때가 있었다. 제주 남원의 동백이 좋았다. 통영도 좋았고, 여수의 오동도도 좋았다. 강진의 백련사도 빼놓을 수 없다. 부산에는 아예 동백섬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중에서도 제일은 선운사 동백이었다. 선운사 뒤꼍으로 들어서면, 수백 년 된 동백 숲이 피워낸 꽃들이 반기는 게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올해는 동백을 보러 갈 여유가 나지 않아 고심 끝에 작은 동백 화분을 주문했다. 작은 가지에 달려있는 꽃망울이 금방이라도 꽃을 피워낼 것 같았다. 며칠을 노심초사하며 기다렸고, 마침내 꽃이 피었다. 하지만 이게 뭔가, 꽃송이는 이내 고개를 숙인 채 말라갔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나무가 추울까 봐 따뜻한 실내에 들여놓은 것이 잘못이었다. 늦겨울 한기 속에서 꽃을 피우는 동백이다. 당연한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동백꽃은 질 때가 되면 어느 순간 꽃째로 툭, 떨어진다. 꽃잎을 흩날리는 일 없이 덤덤히 떠나는 모습은 비장하다. 그 모습을 두고 많은 시인들은 이별을 이야기했다. 군대 시절, 작은 수첩에 깨알같이 필사를 한 채 두고두고 외우던 김용택 시인의 "선운사 동백꽃"도 그렇다. '여자에게 버림받고 /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 맨 발로 건너며 /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 이 악물고 / 그까짓 사랑 때문에 / 그까짓 여자 때문에 / 다시는 울지 말자 / 다시는 울지 말자 / 눈물을 감추다가 / 동백꽃 붉게 터지는 / 선운사 뒤안에 가서 / 엉엉 울었다' 이 악물고 두 눈 부릅뜨고 살얼음 낀 도랑물을 건너도 이별 앞에선 도리가 없다. 꽃이 피면 져야 하고, 만나면 헤어져야 하는 건 세상의 이치라 하지만, 아직도 어리석어 슬프다. 기다리고 기다려 벼락같은 축복으로 만난 것이다. 그럼에도 툭, 동백 떨어지듯 왜 헤어져야 하냐는 것이다. 담담해질 수 없는 마음에 다시 화분을 들여다본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꽃봉오리 옆으로 조그만 꽃망울이 새로 돋아나고 있었다. 언제부터 돋아나 있었던 건지도 몰랐던 일이다. 꽃이 지면 당연히 다시 핀다는 것도 잊고 있던 일이다. 눈앞의 이별을 두고 감히 인연을 헤아리려 했으니, 아직도 이리 어리석을 뿐이다.
인연을 두고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이라 한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고, 떠난 이는 반드시 돌아온다. 본래 불교 경전에는 '회자정리'라는 구절만 있었다. 그럼에도 후세의 이들은 '거자필반'이란 말을 기어이 지어내 전하고자 하였다. 인연은 돌아오는 것이라고. 그러니 낙담하지도, 포기하지도 말라고. 다시 동백이 피어나듯. 반드시 돌아올 당신을 기다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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