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은의 천일영화] 고정된 카메라에 담긴 전체주의의 폭압 ‘두 검사’

  •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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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4-09 15:07  |  발행일 2026-04-10
윤성은 영화평론가

윤성은 영화평론가

세르히 로즈니차 감독의 '두 검사'는 소련의 가장 어두운 시기였던 스탈린 대숙청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레닌 사망 이후 권력을 잡은 스탈린은 혁명의 중심에 있었던 볼셰비키 원로들을 오히려 위협의 대상으로 보고 제거하기 시작했다. 국가가 지역별로 체포 및 사살 인원 할당량까지 정해가며 무고한 시민들을 숙청하던 광기의 시대였다. 이 때 처형된 인원은 공식 기록만 약 70만 명으로 알려져 있다. '두 검사'는 바로 이 거대한 국가 폭력의 메커니즘을 한 장의 혈서와 검사들의 만남을 통해 조망하는 작품이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오가며 동유럽 전체주의의 폭거를 탐구해온 세르히 로즈니차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고정된 카메라를 통해 역사의 부조리를 파헤친다.


1937년, 브랸스크 교도소의 한 수감자가 산더미처럼 쌓인 탄원서를 소각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는 무심하게 종이를 태우기 시작하지만, 범상치 않은 혈서 하나를 발견하고 망설인다. 그리고 감시를 피해 혈서를 문밖으로 밀어낸다. 영화는 신입 검사 알렉산드르 코르녜프가 그 혈서를 쓴 수감자를 만나기 위해 교도소를 방문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교도소 관리자들은 코르녜프의 면회를 허락하지 않으려 갖은 애를 쓰지만, 코르녜프는 결국 자물쇠로 겹겹이 무장한 벽들과 감시의 눈들을 지나 혈서의 당사자이자 자신의 스승이기도 한 법학자 스테프냐크를 만난다. 억울하게 수감되어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있는 스테프냐크의 증언은 신입 검사에게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관객들 또한 미동도 없는 아카데미 비율(1.37:1)의 카메라가 담아내는 교도소의 육중한 문들 사이에 갇힌 것처럼 답답함을 느낀다. 거대한 미로 같은 교도소 공간은 관료주의에 맞서는 개인의 존재를 압도하고 무력화시키는 시각적 장치로서 중요하게 작동한다.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된 코르녜프는 안드레이 비신스키 검찰총장과 대면하기 위해 검찰청으로 간다. 화려하고 탁 트인 검찰청과 그곳을 자유롭게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브랸스크 교도소의 정경과 대비되지만, 코르녜프에게 차갑고 불친절하기는 마찬가지다. 또 한 번의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비신스키는 코르녜프의 행동을 의심스러워하면서도 결국에는 그가 바라는 대로 브랸스크 교도소를 감찰할 것을 약속한다. 코르녜프는 안도하며 비신스키가 마련해준 기차에 몸을 싣는다. 여기서 코르녜프는 사업가 두 명을 만나게 되는데, 이들은 스탈린 대숙청의 본질을 말해주는 중요한 대화를 나눈다. 사업가들은 아직 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은 처벌할 수는 없다는 코르녜프에게 사고가 터진 뒤에는 이미 늦기 때문에 배신자는 미리 찾아내야 한다는 논리로 맞선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스티븐 스필버그)처럼 SF적 발상이 가미된 그들의 주장에 코르녜프는 더 응수하지 않는다. 이는 그 또한 전체주의의 덫에 걸려드는 순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1937년 소련의 풍경은 우리 현대사의 '인혁당 사건'을 환기시킨다. 1960-70년대 군부정권은 국가 안보라는 명목으로 무고한 이들을 간첩으로 몰아 고문했고, 대법원 판결 후 불과 18시간 만에 사형을 집행했다. 먼저 배신자를 찾아 처단해야 한다는 논리는 간첩을 만들어내서라도 권력을 정당화하려 했던 군부정권의 논리와 거울처럼 닮아 있다. 국가가 법치라는 가면을 쓰고 개인의 존엄을 압살하는 비극은 시대와 공간을 불문하고 반복된다. 전세계를 향한 '두 검사'의 경고도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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