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 오월의 피아노

  • 정혜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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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5-06 14:38  |  수정 2026-05-07 10:14  |  발행일 2026-05-07
정혜진 변호사

정혜진 변호사

중고등학교 시절 내가 살던 집은 골목 안쪽에 있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내려오면 차가 다니는 큰길이 나오는데, 골목길과 큰길이 만나는 바로 그 지점에 피아노 학원이 있었다. 골목길을 오갈 때마다 나는 늘 그 피아노 학원 쪽을 쳐다보며 걸었고, 거기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한 번도 들어가 보진 못했다. 빠듯한 살림에 학원비의 여유는 전혀 없다는 정도는 철부지 나도 알 수 있었으니까.


고등학교 2학년 오월의 어느 날, 아빠가 대구백화점(당시만 해도 전성기를 누리던)에 가서 직접 골랐다는 갈색 업라이트 피아노가 집으로 왔다. 피아노 학원도 못 다니던 형편에 새 피아노가 생기다니! 피아노 학원에 보내달라고 조른 적도 없었고, 그렇다고 전교 1등을 한다거나 무슨 큰 선물을 받을 만한 일도 없었다. 뜻밖의 엄청난 선물에 나는 이게 꿈인가 싶을 정도로 어리둥절했다. 갑자기 왜 피아노를 선물하는지 아빠에게 물었지만, 과묵한 성격의 아빠는 "옛날부터 사 주고 싶었지"라고만 하셨다. 골목길을 오갈 때마다 피아노 학원 쪽을 쳐다보며 때로 걸음을 멈추곤 하던 막내딸을 아빠는 보았던 걸까.


여전히 학원은 다니지 못했지만, 골목길 끝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전에만큼 부럽진 않았다. 악보라고 해봐야 음악책과 찬송가집이 다여서 찬송가를 떠듬떠듬 치는 수준에 불과했지만, 그해 늦봄과 여름, 그리고 초가을까지 우리 집 피아노 소리는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골목길로 퍼져나갔다. 엄마는 그 시끄럽고도 종종 끊기는 막내딸의 어설픈 피아노 반주에 맞춰 찬송가를 따라 부르시곤 했다.


그리고 그해 가을, 아빠가 세상을 떠났다. 피아노를 선물로 받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고였다. 내 피아노가 처음 생긴 날처럼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 이후로 피아노 앞에 앉지 않았다. 세상엔 설명되지 않는 운명의 복선 같은 게 있는 건지, 아무런 계기도, 특별한 보상도 아니었던 그 선물이 왜 하필 아빠가 돌아가시기 직전 봄에 내게 주어졌는지 피아노를 볼 때마다 원망스러웠다. 아빠가 오지 않는 집에서 피아노는 먼지만 쌓여갔고, 골목길에선 더 이상 시끄러운 피아노 소리가 들리진 않았다. 갑작스럽게 가장이 된 엄마가 생계를 위해 가게를 얻고, 그 가게에 딸린 작은 방으로 이사하면서 피아노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한 칸짜리 방에 피아노가 있을 자리는 없었다. 결국 시집간 큰언니의 딸, 어린 조카에게 내 생애 첫 피아노를 넘겼다.


학업과 직장일로 오랫동안 잊고 있던 피아노가 다시 마음에 들어온 건 마흔이 훨씬 넘어서였다. 아빠가 피아노를 사 준 날처럼, 또 아빠가 돌아가신 날처럼, '어느 날 갑자기' 피아노가 너무 간절해졌다. 아빠가 사 준 피아노를 다시 가져오고 싶었지만, 이미 조카의 피아노가 되어버린 걸 돌려달라고 할 수 없어 그 피아노와 같은 색깔, 같은 브랜드의 중고 피아노를 샀다. 그리고 드디어 내 생애 처음으로 피아노 학원에도 등록했다.


꾸준히 열심히 배워 언젠가 가족들을 초대하는 조촐한 연주회를 하고 싶다. 아빠가 좋아했던 가요, 엄마가 따라 부르시던 찬송을 연주하고 싶다. 아빠는 너무 일찍 가셔서 어쩔 수 없었지만, 엄마가 살아계실 때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아쉬움이 든다. 카네이션 달아드릴 부모님은 이제 없지만, 부모님을 추모하는 연주회이니 오월의 어느 날이 좋을 것 같다. 한때 원망스러웠던 오월의 피아노를 다시 꿈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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