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인사이드] 조용필 노래 오케스트라 선율로 편곡한 대구 청년 작곡가 강한뫼...“제 음악 철학의 주요 키워드는 ‘문학과 사람’”

  • 박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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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5-06 07:50  |  수정 2026-05-06 08:59  |  발행일 2026-05-06
가왕 조용필의 명곡을 오케스트라 선율로
‘편곡 강한뫼’ TV방송 후 부모님 기뻐하셔
‘내가 좀 특별한 일 했구나’하는 생각 들어

AI는 ‘또 하나의 작곡가’일 뿐 입지 불안 없어
대구만의 콘텐츠로 지역 예술 저력 보여주고파

'가왕' 조용필의 무대 뒤에 대구 출신의 한 젊은 작곡가가 있었다. 지난해 추석, 광복 80주년 KBS 대기획으로 방영된 조용필 무대에서 명곡 '슬픈 베아트리체'가 웅장한 오케스트라 선율로 되살아나는 순간, TV 화면 하단에 새겨진 '편곡 강한뫼'라는 이름 세 글자는 지역 문화계의 시선을 멈춰 세웠다.


대구 출신 작곡가 강한뫼는 양악과 국악의 융합, 지역 아티스트들과의 건강한 네트워크를 통해 이 공연을 보러 반드시 대구에 가야 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독창적인 콘텐츠로 지역 예술의 경쟁력을 높이고 싶다고 말했다. <박주희기자 jh@yeongnam.com>

대구 출신 작곡가 강한뫼는 "양악과 국악의 융합, 지역 아티스트들과의 건강한 네트워크를 통해 '이 공연을 보러 반드시 대구에 가야 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독창적인 콘텐츠로 지역 예술의 경쟁력을 높이고 싶다"고 말했다. <박주희기자 jh@yeongnam.com>

"조용필 선생님을 실제로 뵈었는데 정말 젠틀하셨어요. 수많은 연주자와 무대를 경험한 어른임에도 '본인만 잘하면 된다'며 오히려 겸손해하시더라고요.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따뜻한 말씨에서 대선배의 존중을 느꼈습니다."


지난달 대구 중구 대봉동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작곡가 강한뫼(35)와 마주했다. 영남대 작곡과를 졸업한 그는 '조용필이 선택한 작곡가냐'는 질문에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SM 클래식스 소속인 그에게 KBS 측의 의뢰가 닿았고, 원곡의 클래시컬한 결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오케스트라의 풍성함을 극대화하는 작업을 맡았을 뿐이라는 덤덤한 설명이 돌아왔다.


"사실 여러 가수와 협업하면서 '내가 이런 작품도 한다'는 드라마틱한 소회는 별로 없었거든요. 그런데 조용필 선생님의 무대가 방송된 후 부모님께서 지인들의 연락을 많이 받으셨다며 기뻐하시더라고요. 그때서야 '제가 다른 때보다 좀 특별한 일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와의 대화는 명쾌했다. 그는 영감에만 의존하는 낭만주의자라기보다 자신의 음악이 어떻게 소비되고 어떤 경로로 대중에게 닿아야 하는지를 치밀하게 계산하는 '스마트한 창작자'에 가깝게 느껴졌다. 밤샘 대신 '아침 7시 기상' 루틴을 지키고, 홈페이지를 직접 관리하며 자신의 작업물을 축적해가고 있다. 아이돌의 음악을 오케스트라로 바꾸고, 국악과 양악을 넘나들며 경계 없는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청년 작곡가 강한뫼. 그의 음악 이야기와 지역 예술가로 묵묵히 걷고 있는 행보에 대해 들어봤다.


대구시 중구 대봉동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강한뫼 작곡가. 그는 수많은 장르 중 가곡에 애착이 간다면서 시의 의미를 감히 해석하기보다, 사람들이 시를 더 잘 들을 수 있도록 아름다운 선율에 잘 담아내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주희기자 jh@yeongnam.com>

대구시 중구 대봉동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강한뫼 작곡가. 그는 "수많은 장르 중 가곡에 애착이 간다"면서 "시의 의미를 감히 해석하기보다, 사람들이 시를 더 잘 들을 수 있도록 아름다운 선율에 '잘 담아내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주희기자 jh@yeongnam.com>

▶1991년생이라는 젊은 나이에 국악과 클래식을 종횡무진하고 있다. 이런 융복합적인 활동의 원동력은 어디에 있나.


"억지로 어떤 새로운 장르를 파헤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 판이 열렸을 때 도전했고, 그에 대한 긍정적인 피드백이 쌓이면서 영역이 자연스럽게 넓어졌다. 사실 국악은 어릴 적 아버지가 곁에서 시조창을 하시거나 대금을 불던 환경 덕분에 내 몸에 그 정서가 체득됐다. 대학에서 클래식 작곡을 전공하면서도 늘 한국적인 요소를 어떻게 서양 악기로 녹여낼지 고민해왔다. 2014년 열린 중앙음악콩쿠르에서 작곡 부문 1위를 안겨준 '살풀이'도 그 고민의 결과물이었다."


▶창작 국악 연주단체 '소옥'을 결성하며 본격적인 국악 작업을 시작했는데, 국악 작곡의 매력 혹은 어려움은 무엇인가.


"국악은 역설적이게도 한국에서 가장 보편적이지 않은 장르가 돼가고 있다. 서양 음악의 12음계와 달리 국악기는 악기마다 메커니즘의 제약이 많아 더 깊은 공부가 필요하다. 하지만 제약이 많은 만큼 그 고유한 소리를 조화롭게 풀어냈을 때의 성취감이 크다."


▶SM 엔터테인먼트 레이블인 'SM 클래식스'와는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


"2021년쯤 친분이 있던 피아니스트의 소개로 연결고리가 생겼다. 당시 SM 클래식스는 SM이 보유한 강력한 아이돌 IP(음악)를 오케스트라 작품으로 재해석해 공연하는 것을 핵심 콘텐츠로 삼고 있었는데, 이를 현실화할 편곡자를 물색 중이었다. 그때 여러 편곡자에게 레퍼런스를 받았는데, 저는 NCT U의 'Make A Wish'라는 곡을 택했다. 사실 아이돌 음악 중에서도 클래식으로 바꾸기에 가장 난해한 곡이었다.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이걸 선택한 사람은 미친 사람'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안 해본 것에 도전하는 걸 좋아해서 덥석 물었고, 그 결과물을 보신 대표님이 전속 계약을 제안하셨다."


▶수많은 장르 중 애착이 가는 작업으로 '가곡'을 꼽았다.


"가곡은 시(詩)라는 문학적 언어를 기반으로 한다. 제 음악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문학과 사람'이다. 제가 좋아하는 키워드가 모두 응축된 장르가 가곡인 셈이다. 외국 가곡은 선율의 아름다움을 듣지만, 한국 가곡은 시의 의미가 즉각적으로 전달된다는 점에서 남다른 사명감을 느낀다. 시의 의미를 제가 감히 해석하기보다, 사람들이 시를 더 잘 들을 수 있도록 아름다운 선율에 '잘 담아내는' 역할을 하고 싶다."


▶많은 자신의 창작 작품 중 가장 애정을 느끼는 한 곡만 꼽는다면.


"2013년에 쓴 가곡 '어머니'다. 아버지께서 직접 쓰신 시에 곡을 붙였다. 돌아가셔서 뵌 적 없는 할머니를 시를 통해 만나는 느낌으로 썼는데, 제 음악적 뿌리를 담고 있는 곡이라 가장 애착이 간다."


자신의 작업실에서 해외에서 구매해온 타악기를 보여주고 있는 대구 출신 작곡가 강한뫼. <박주희기자 jh@yeongnam.com>

자신의 작업실에서 해외에서 구매해온 타악기를 보여주고 있는 대구 출신 작곡가 강한뫼. <박주희기자 jh@yeongnam.com>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직접 운영하며 자기 PR에도 적극적이다.


"작곡가도 산업 구조 안에서 고민해야 한다. 제 작품을 기록하고 노출하는 건 '강한뫼'라는 브랜드를 구축하는 일이다. 누군가 '정선'의 그림을 주제로 한 국악 관현악곡을 찾을 때 제 곡이 검색되게끔 시스템을 만드는 식이다. 실제로 유튜브를 보고 연락 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AI가 작곡하는 시대, 작곡가의 입지가 불안하진 않나.


"최근 AI가 내놓은 결과물의 퀄리티에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입지가 불안하다고 느낀 적은 없다. 클래식 작곡가는 이미 수백 년 전의 거장 베토벤, 모차르트와 늘 경쟁하며 살아온 존재들이다. AI 역시 '또 하나의 작곡가'가 등장한 것뿐이다. 특정 분위기의 음악을 단시간 내에 구현하거나 공포영화 배경 음악과 같은 문법이 정형화된 음악을 만들어 내는 데는 AI가 압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럴수록 작곡가 고유의 색깔과 정서가 중요해진다. 베토벤의 음악을 '베토벤이라서'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기술이 대체할 순 없다."


▶대구 지역 예술가로서 느끼는 제약이나 지향점은 무엇인가.


"물리적 제약은 전혀 없다. 데이터를 e메일로 주고받는 시대라 제가 가장 편안한 곳에 머무는 것이 창작에 도움이 된다. 서울의 인프라가 부러울 순 있겠지만, 오히려 대구에서만 볼 수 있는 독보적인 콘텐츠를 만드는 것에 사명감을 느낀다. 양악과 국악의 융합, 지역 아티스트들과의 건강한 네트워크를 통해 '이 공연을 보러 반드시 대구에 가야 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독창적인 콘텐츠로 지역 예술의 저력을 보여주고 싶다."


▶최근에 미디 시퀀싱과 녹음 기술 공부에 빠져 있다고 했다.


"과거에는 곡을 들려주기 위해 매번 연주자를 섭외하고 녹음실을 잡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감당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 가상 악기만으로도 실제 연주에 버금가는 음원을 스스로 제작할 수 있는 시대다. 이에 미디 시퀀싱과 녹음 기술 공부에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누군가 제 작품을 궁금해할 때 오케스트라를 섭외하지 않더라도 고퀄리티의 소리를 들려줄 수 있도록 작곡 외적인 기술적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밤 12시 전에 자고 오전 7시에 일어나는 규칙적인 루틴을 지키는 이유도 결국 오래, 더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다. 시대와 세대를 넘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소리'를 찾는 여정을 계속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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