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 CFA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을 공부하던 시절, 우리는 수많은 기준과 원칙을 배운다. 공간은 어떻게 구성되는지, 구조는 어떤 논리로 서는지, 재료는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는지. 도면 위의 선들은 분명했고, 정답은 비교적 명확했다. 학교에서의 건축은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현장은 종종 그 확신을 무너뜨린다.
최근 한 프로젝트에서 70세가 넘은 건축사 한 분과 함께 일할 기회가 있었다. 오랜 시간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분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배우고 실무를 통해 익혀온 방식대로 논리와 기준을 설명하며 디테일을 풀어내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설명들이 잘 먹히지 않았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부분은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고, 반대로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문제들을 그분은 현장에서 바로 짚어냈다.
처음에는 답답했다. 왜 저렇게 직관적으로 판단하지? 왜 굳이 저 방식을 고수하지?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니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그분의 판단은 단순한 감각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몸으로 축적된 경험의 결과라는 것을.
도면에서는 멀쩡해 보이는 디테일이 실제 시공에서는 왜 어긋나는지, 어떤 공정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실수하는지. 그런 것들은 책상 앞에서 완전히 배울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현장의 먼지와 시간 속에서 몸으로 익혀야만 체득되는 감각에 가까웠다.
생각해보면 건축은 늘 두 세계 사이에 존재해 왔다. 머리로 이해하는 건축과 몸으로 익히는 건축. 설계와 시공, 이론과 경험, 도면과 현장 사이에서 말이다. 우리는 흔히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에 주목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오래된 경험이 최신의 논리보다 더 정확한 답을 알고 있기도 하다.
물론 경험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시대는 변하고 기술은 발전한다. 그러나 반대로, 아무리 많은 지식과 데이터를 갖추더라도 현장을 오래 통과한 사람의 감각을 단숨에 따라잡을 수도 없다. 건축이 어려운 이유이자, 동시에 흥미로운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 프로젝트를 마치며 묘한 아이러니를 느꼈다. 책상 앞에서 수없이 다듬어온 건축적 노하우가 어느 순간 무용지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건축을 조금 더 넓게 이해하게 된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좋은 건축은 도면 위에서만 완성되지 않는다. 수많은 시간과 경험, 그리고 현장을 지나온 사람들의 손끝에서 비로소 현실이 된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